[이 아침에 만나는 시]찰옥수수 -김명인

  • 입력 2005년 9월 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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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 오일장 끄트머리

방금 집에서 쪄내온 듯 찰옥수수 몇 묶음

양은솥 뚜껑째 젖혀놓고

바싹 다가앉은

저 쭈그렁 노파 앞

둘러서서 입맛 흥정하는

처녀애들 날 종아리 눈부시다

가지런한 치열 네 자루가 삼천원씩이라지만

할머니는 틀니조차 없어

예전 입맛만 계산하지

우수수 빠져나갈 상앗빛 속살일망정

지금은 꽉 차서 더 찰진

뽀얀 옥수수 시간들!

비얄밭에 기우뚱 옥수수알 놓을 때만 해도 커다란 대문니 하나 남아 있더랬는데, 성근 머리채 틀어 지른 은비녀가 흘러내릴 지경은 아니었는데, 오물락오물락 찐 옥수수 두 알 오전내 굴리고 있구나. 착착 갠 접이의자 같은 저 노파 무릎이 귀를 넘는구나. 복숭앗빛 볼, 앵두 입술, 머루 눈, 마늘 코, 뱅어 손가락, 젖빛 살결 다 놓치고 빈 옥수수 대궁만 가을바람에 서걱이누나. 철부지 처녀애들께 무어라 무어라 중얼대누나. 꽉 차서 더 찰진 옥수수 시간들 잘 누리라고. 아니 아니, 다 놓고 겨드랑 허허로운 팔십도 그다지 서글픈 것만은 아니라고, 모락모락 김 피어오르는 덤 하나를 얹어 건네며.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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