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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9월 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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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저녁 일본 도쿄(東京) 기타노마루(北の丸) 공원 안의 부도칸(武道館) 경기장은 울부짖음으로 떠나갈 듯했다. 오후 7시부터 2시간 동안 온몸으로 17곡의 노래를 부른 가수 비와 그의 몸동작 하나하나에 울부짖은 1만여 명의 일본 여성 관객…. 비는 이날 무대에서 벗고 또 벗었다. 어떤 설명도 필요 없었다. 오로지 비의 근육질 몸 하나로 충분했다.
비의 공연을 익숙하게 보아 온 한국 관객에게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노래보다 몸이 강조된 콘서트였지만 10대 여학생부터 60대 할머니까지 공연장을 가득 메운 일본 여성들은 넋을 잃은 듯했다.
‘레이니 데이-스페셜’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비의 부도칸 콘서트는 7월 도쿄 국제포럼, 8월 오사카(大阪) 후생연금회관에서 열렸던 비의 첫 번째 일본 콘서트 ‘레이니 데이-저팬’의 앙코르 성격. 8월 13일 오전 11시 시작된 티켓 판매는 같은 날 오후 6시 총 2회 공연 티켓 2만 장이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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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첫 순서. 2층 무대에서 뛰어나오는 비를 보자 1만여 명의 일본 팬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흰 재킷에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난 비는 데뷔곡 ‘나쁜 남자’에 이어 ‘나’, ‘악수’를 잇달아 불렀다.
비의 본명인 ‘정지훈’을 외치는 일본 팬들을 의식한 듯 비는 말을 아꼈다. 그 대신 최대한 몸으로 모든 것을 표현했다. ‘스으∼, 아’ 하는 탄성과 땀방울 맺힌 근육, 그의 주특기인 옷 벗어던지기 등의 기술을 현란하게 선보였다. 비는 웃다 말다하며 관중석과 기(氣) 싸움을 벌였고 결국 소매를 찢어 팔 근육을 보여줌으로써 객석의 괴성을 불러일으켰다.
이날 공연의 게스트는 박진영. 검은 재킷에 망사 티셔츠, 무릎까지 걷어붙인 바지 차림의 박진영은 ‘난 여자가 있는데’와 ‘처음 만난 남자와’ 등을 부른 후 “내가 비를 가르친 스승”이라고 말해 관중의 환호를 받았다.
공연 중반쯤 비가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부르자 객석 여기저기에서 한국말로 따라 부르는 관객들이 눈에 띄었다. 하이라이트는 공연 마지막 부분 ‘이츠 레이닝’을 부를 때. 긴장된 선율의 ‘이츠 레이닝’ 전주 리듬이 흐르고 비가 공중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 ‘스으∼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하자 1만여 명의 관중은 의자 위로 올라서서 “비, 비”를 연호했다. ‘이츠 레이닝’의 격렬한 사운드에 울려 부도칸 천장에 매달린 대형 일장기가 파도치듯 출렁였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1만여 명의 일본 팬의 소지품 중 야광봉은 기본이었다. 큐빅으로 ‘ピ(피·비의 일본발음)’를 새긴 티셔츠를 입은 팬, 해바라기 10개를 손에 든 팬도 있었다. 비의 얼굴 9개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가와다 세이스코(55) 씨는 “2만 원을 주고 티셔츠를 샀다”며 “나는 진정한 비의 팬”이라고 자랑했다. 2시간 내내 일어서서 노란 국화를 흔든 62세 여인은 “팬클럽에서 노란색 꽃을 맞춰 왔다”고 자랑했다.
부도칸은 ‘일본의 카네기홀’로 불리는 1만 석 규모의 명성 높은 공연장. 한국 가수로는 1984년 조용필이 처음 부도칸에서 단독 콘서트를 가졌지만 명맥이 이어지지 않다가 올해는 8월 박용하에 이어 9월 비, 11월 류시원 등 한국의 남자 가수들이 잇달아 무대에 오른다.
도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비-세븐 왜 인기있을까…일본가수엔 없는 파워-카리스마에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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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공연 시작 30분 전. 공연장 바깥에서 비의 포스터 사진을 카메라로 찍고 있던 약사 노지마 미카(47) 씨에게 비에 대해 묻자 “꺅” 소리부터 지른다.
“‘나쁜 남자’, ‘이츠 레이닝’이 저의 애창곡입니다.”
대학원생 히라노 요코(29) 씨는 자칭 ‘세븐’ 팬이라는 친구 손을 붙잡고 공연장으로 들어서며 “비 같은 가수를 처음 봤습니다. 다부진 몸에 파워풀한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노력하는 가수라고 생각돼요”라고 말했다.
가수 보아, 탤런트 배용준, 류시원 등의 한류(韓流) 스타들 사이를 비집고 비와 세븐이 새로운 스타로 일본 시장을 헤쳐 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비는 일본에서 앨범 ‘이츠 레이닝’, 세븐은 싱글 앨범 ‘히카리(光)’와 ‘스타일’ 2장을 발매했다. 두 가수의 일본 오리콘 차트에서의 음반판매 순위는 ‘10위권’ 정도. 여가수 보아가 지금까지 3장의 앨범과 1장의 베스트 앨범을 내 모두 1위를 석권했던 것에 견주어보면 결코 뛰어난 성적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의 부도칸 콘서트는 전 회 매진됐고 5월 지바 현에서 열린 세븐의 두 번째 싱글 음반 쇼케이스에는 6000여 명이 모여 환호했다.
비와 세븐의 인기 행보가 주목되는 것은 이들이 이른바 ‘자생적 한류스타’라는 점 때문이다. 이들은 데뷔 때부터 일본 진출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 스타도 아니고, 박용하나 류시원처럼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가수로 주목받는 것도 아니다.
일본의 대중문화평론가들은 두 남성 가수의 인기요인을 ‘일본 남성가수들과의 차별성’에서 찾는다. 비와 세븐은 음악적으로 ‘J-pop’보다는 오히려 미국 힙합이나 리듬앤드블루스 스타일에 가깝다. 거기다 △남들이 따라하기 힘든 파워풀한 춤과 노래 △근육질을 앞세운 남성미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 등이 인기요인이라는 것. 일본 대중음악계는 전통적으로 ‘엑스 저팬’, ‘비즈’ 등의 록 밴드나 ‘긴키 키즈’, ‘아라시’ 등 아기자기한 아이돌 그룹이 강세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과격하게 춤을 추며 남성의 힘을 과시하는 이들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라는 해석이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세계적인 음반회사 유니버설의 아시아 지역 사장인 해리 후이는 “미국에 내놓아도 전혀 뒤지지 않는 당당한 아티스트가 바로 비”라고 말했다. 또 산케이스포츠 지는 최근 “세븐은 지금까지와의 한류스타와는 다른 한국 가수”라고 극찬했다. 보아가 뚫은 일본 음악 시장에 이들은 한류 가수의 ‘역동성’을 불어넣고 있다.
도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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