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간병입문’…치매 할머니 잠결의 미소 보았나요

  • 입력 2005년 6월 18일 03시 07분


◇간병입문/모브 노리오 지음·임희선 옮김/112쪽·8800원·이너북

지난해 일본의 ‘문학계 신인상’을 받고,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쿠타가와상’까지 거머쥔 작품. 지은이 모브 노리오(35)는 이 소설로 데뷔했다. 그는 오사카 예술대 문예학과를 졸업한 뒤에 신발창고 직원 등 갖가지 일을 하면서 록 밴드에서 활동해 왔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나’도 록 밴드에서 음악을 해 왔다. 서른이 다 된 나이에 금발로 물들인 머리, 틈만 나면 대마초 피울 생각이나 하던 나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뉴욕에서 도쿄로 날아온다. 기저귀를 채워야 할 만큼 몸이 좋지 않은 할머니를 간병하는 효손(孝孫) 치고는 상당히 독특한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나’는 쉴 새 없이 독백을 하는데, 그게 글로 옮겨진 것이 이 소설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생각의 발길이 닿는 대로 이야기의 주제와 소재가 줄곧 바뀌는 분방하고 개성적인 랩송이다. 그 랩송을 들어 나가다 보면 이야기의 전체 윤곽이 차츰차츰 또렷해진다.

‘박람회에서 간병용 로봇을 처음 보았을 때 이스라엘의 무인 폭탄 처리 장비를 떠올렸다. 금속부품을 다루는 제조기계 같은 차가운 그 모양새. 그걸 만든 기업의 무의식은 이런 게 아닐까. 자리보전을 하고 있는 늙은이는 (자식들의) 가정생활을 위협하는 폭탄이다.’

누구도 떠맡기 싫어하는 할머니의 간병을 맡으면서 나는 ‘도무지 (할머니의) 친딸 같아 보이지 않는 고모’를 시니컬하게 쳐다보다가 나 스스로도 갈등을 겪는다. ‘수건, 전기 주전자, 갈아입을 옷…이런 흔해 빠진 물건들이 할머니에게 쾌적함을 주다니 마치 기적 같지 않은가? 목욕 타월 한 장만 있으면 나는 할머니의 목을 졸라 죽일 수도 있단 말이다, 친구.’

하지만 나는 할머니의 손바닥을 문지르거나, 죽을 떠먹이면서 한 인간이 누구나 다다르게 되는 노경(老境)의 허무함과 고독, 늙어서도 좋아하는 드라마와 스모, 생사의 의미를 살펴보다가 자기 영혼이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 느낌과 깨달음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 나는 칙칙한 겸손함이나 깍듯한 예의의 잔인함을 확 벗어던진 로커 출신 아닌가.

“매일 밤 나는 할머니의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확인하고, 작은 전구의 희미한 빛 속에서 몰래 안심한다. 사이좋은 아이들이 ‘잘 자라’는 인사를 미소만으로 나누듯이.”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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