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히말라야에 버려진 ‘양심’

  • 입력 2005년 5월 28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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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개를 완등한 사람은 11명이 있다고 한다. 그중에 한국인이 세 명이나 있다.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씨가 그 주인공이다. 등산에는 등정주의와 등로주의가 있다고 한다. 산을 정복하겠다는 사람과 산을 즐기겠다는 사람을 구별해 하는 말이다. 어쩌면 우리들은 지나치게 정복의 명예만 탐하는 건 아닐까.

이달 초 히말라야 14봉 중의 하나인 다울라기리 봉(8167m) 베이스캠프(4800m)에 올라 지난 50년 동안 여러 원정대가 버리고 간 쓰레기를 청소하며 꼬박 7일을 매일 10시간 이상 걸어서 올라갔다. 원정대들은 정복을 위해 정상 정복만 끝내면 모든 짐과 쓰레기를 버리고 하산하기 바쁘다. 그렇게 버리고 간 세월이 50년이다. 빙하지역인 그곳은 어떤 쓰레기도 썩지 않는다. 쓰레기 중에는 유독 한국 쓰레기가 많았다. 한글로 된 라면 봉지, 김치캔 등을 수없이 볼 수 있었다.

히말라야 14봉 완주자의 한 사람인 한왕용 대장은 14개 봉의 마지막 봉을 내려오면서 깊은 반성을 했다고 한다. “그동안 등정주의에 사로잡혀 산을 너무 훼손했다. 이제는 더 이상 정상은 가지 않겠다. 히말라야 14봉을 다시 찾아와 청소를 통해 빚을 갚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네 번째 청소 산행에는 나도 기꺼이 따라나섰다.

‘평소 자기 방도 잘 청소하지 않는 사람이 그 먼 곳까지 무슨 청소냐?’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지구의 지붕을 청소하면서 지구가 깨끗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싶었고, 더 나아가 나의 영혼이 청소되고 세상 구석구석이 깨끗해지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싶었다.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우선 청소부가 되어 청소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 종교인은 말로써 많은 덕담을 설파한다. 그러나 실제로 빗자루를 들고 청소해 보니 내 마음이 맑아지고 세상도 깨끗해질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홍창진 천주교 신부·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회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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