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거창한 대장장이 vs 섬세한 검투사

  • 입력 2005년 5월 18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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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 감독의 최신작 ‘킹덤 오브 헤븐’(5월4일 개봉)은 영웅 신화를 다룬 서사극이란 점에서 감독의 가슴 벅찼던 2000년 작 ‘글래디에이터’를 떠올리게 한다. 두 영화의 주인공은 각각 ‘꽃미남’ 올랜도 블룸과 ‘터프 가이’ 러셀 크로, 떠오르는 당대 최고 스타들이란 점도 닮았다. 하지만, 최신작일수록 더 나은 완성도가 보장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킹덤…’은 아쉽게도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듯한 허전함을 준다. 두 영화를 비교해 그 이유를 알아봤다.》

○ 인류애 vs 가족애 두 주인공의 출신과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묘한 역(逆)관계에 있다. ‘킹덤…’에서 미천한 대장장이 출신인 발리안(올랜도 블룸)은 “적들(이슬람)과 우리(십자군)는 앞 세대가 저지른 일로 지금 싸우고 있다. 저들과 우리 사이에 우열은 없다. 둘 다 신성하다”며 거대담론을 펼친다.

반면 ‘글래디에이터’에서 장군 출신인 막시무스(러셀 크로)는 “내 집은 언덕에 있는 아담한 집입니다. 흙은 아내의 머릿결처럼 검고, 조랑말이 아들과 뛰어논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가족을 지켜주세요”라며 가족사랑과 향수(鄕愁)를 외친다. 인류 공존을 부르짖는 대장장이와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장군. 누가 더 매력적인가. 관객은 ‘큰’ 주장을 하는 ‘작은’ 남자보다 ‘작은’ 주장을 하는 ‘큰’ 남자의 처지를 더 절실하게 느끼는 법.

○ 대사에서 갈리는 카리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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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순간 두 영웅은 군사들을 독려한다. 선동의 기술에서 그 수준 차는 크다. ‘킹덤…’의 발리안이 “죽지 않기 위해 싸우자”며 병사들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즉물적 연설을 한다면,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는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며 죽음에 대한 공포를 녹여버리는 철학적 연설을 한다(#1).

한편 두 영웅이 자신을 사랑하는 지체 높은 여인들과 키스(혹은 정사)하기 직전 나누는 대화도 사고의 깊이에서 간극을 드러낸다(#2). 이런 차이는 두 주인공의 카리스마 격차로 이어진다.

○ 흐름이 다른 내러티브

‘킹덤…’은 살인을 저지른 발리안이 속죄를 위해 예루살렘에 갔다가 기독교와 이슬람이 공존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는다는 내용. 주인공의 변화와 성장을 보여주는 일종의 ‘성공 스토리’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에게 영향을 끼치거나 주인공과 갈등하는 ‘지배적 주변인물’들이 중간에 쓱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야기의 흐름이 이어졌다 끊겼다 하는 ‘단속적(斷續的) 내러티브’가 나타나는 것(그래픽).

반면 ‘가족을 사랑한 장군이→가족을 잃은 뒤→가족의 복수를 위해 싸우다→죽어서 가족과 재회하는’ 줄거리의 ‘글래디에이터’는 주인공의 자의식이 시종 강한 자장(磁場)을 형성한다. 따라서 주인공을 둘러싼 여러 인물이 시종 얽히고설키는 ‘연속적(連續的) 내러티브’를 보여주는 것.

‘킹덤…’의 이야기가 강물처럼 흘러가버리는 느낌인 데 반해, ‘글래디에이터’의 이야기는 찰떡처럼 질게 뭉쳐진 인상을 받는 건 내러티브 구조의 이런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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