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망가진 정준호’ VS ‘돌아온 식인뱀’

  • 입력 2005년 4월 14일 15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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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명수’ 사진 제공 영화인
‘역전의 명수’ 사진 제공 영화인
▼역전의 명수▼

15일 개봉되는 ‘역전의 명수’는 아마 이런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①정반대 성격을 가진 쌍둥이 얘기 어때? ②맞아. 세련된 미남이지만 못돼먹은 이미지도 갖고 있는 정준호를 1인 2역으로 쓰자. ③정준호가 성공한 영화가 ‘가문의 영광’이잖아. 그가 가문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내용이면 ‘먹고 들어가지’ 않을까? ④코미디 영화는 제목이 반이야. ‘역전의 명수’ 어때? 진짜 ‘역 앞에 사는 청년 명수’란 뜻으로. 웃기지? ⑤흥행의 3요소 있잖아? 섹스, 폭력, 욕설. 이걸로 처음부터 밀어붙여. 막판엔 살짝 감동을 집어넣는 것도 잊지 말고. ⑥정준호 원 톱(One top)으론 약하지 않을까? 여배우를 파트너로 붙이고, 조연들 빵빵하게 채우고.

한마디로 ‘속 보인다’는 얘기. 물론 이런 의도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역전의 명수’가 문제인 까닭은 이런 아이디어의 조각들이 가공되지 못한 채 그야말로 아이디어의 수준과 상태로 죽 나열된다는 데 있다. 인물과 인물이, 혹은 에피소드와 에피소드가 만나는 어떤 조합의 기술이나 접착력도 상실한 이 영화는 머리 위에 쟁반을 이고 요리조리 잘도 걸어가는 정준호의 묘기를 보는 것 외에는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다. 박정수, 조형기, 임현식, 박노식 등 출연만으로도 웃음을 보장해 주리라 믿었던 조연들의 캐릭터는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붕 떠 있다.

쌍둥이인 명수와 현수는 성격과 재능이 영 딴판이다. 머리 나쁜 형 명수는 국밥집에서 배달을 하며 의리와 주먹으로 산다. 동생 현수는 서울대 법대에 수석 입학한 수재지만 못 돼먹었다. 어머니(박정수)는 “잘될 놈 몰아주자”며 현수에게 닥치는 모진 일을 명수가 대신하도록 강권한다. 착한 명수는 동생 대신 군대도 가고 감옥도 간다. 출소 날 명수는 미모의 사회부 기자 순희(윤소이)를 만나고, 순희는 부모의 원수를 갚으려고 명수를 이용하려 한다.

줄거리만 읽을 땐 흥미진진한데, 막상 영화를 보면 멍하고 헐렁헐렁한 느낌. 아이디어로만 승부하는 ‘기획 영화’의 한계요, 이론(흥행이론)과 실천(영화연출)의 간극이기도 하다. 박흥식 감독의 장편 데뷔작. 15세 이상 관람 가.

▼아나콘다2▼

‘아나콘다2’ 사진 제공 영화공간

15일 개봉되는 ‘아나콘다2-사라지지 않는 저주’는 철저히 ‘속편의 흥행공식’을 선택했다. 아나콘다는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 어느 놈이 어느 놈인지 분간이 힘들고, 어차피 뱀이 주인공이므로 ‘사람’ 역은 B급 배우들로 가득 채웠으며, 악어 독거미 거머리 등 각종 끔찍 지저분한 것들을 추가한 ‘호러 어드벤처’의 분위기로 볼거리를 확 늘렸으니 말이다. 결국 아나콘다는 꼭 지구상에 실존하는 ‘뱀’이 아니어도 좋은, 여느 공포영화 속 ‘몬스터(괴물)’와 동급 존재가 돼 버렸다. 공포의 범위는 확대됐지만, 피부로 느끼는 체감 공포지수는 줄어들었다는 얘기.

먹으면 불로장생하는 희귀 난을 찾기 위해 의학자 잭(매튜 매스든)이 이끄는 연구팀은 빌 선장(조니 메스너)의 배에 올라타고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으로 들어간다. 선박은 좌초되고, 연구팀은 하나 둘 아나콘다의 먹이가 된다. 리더인 잭은 공포에 떠는 탐사단을 위협해 희귀 난의 서식지를 마침내 찾아 내지만, 번식기를 맞아 굶주린 아나콘다들은 떼로 그들을 공격한다.

8년 만에 만들어진 속편은 컴퓨터그래픽 기술의 놀라운 진보를 보여준다. 늪을 헤쳐가는 탐험단을 스멀스멀 스쳐 지나가는 아나콘다의 모습은 등골이 오싹하다. ‘여자 밝히는 놈은 가장 먼저 죽는다’ ‘수다스러운 놈은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등의 소소한 공포영화 법칙을 재확인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

한국인이라면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다. 첫째는 한국계 배우 칼 윤. ‘007 어나더 데이’에 출연했던 릭 윤의 동생인 그는 이 영화에서 빌 선장을 돕는 인도네시아 현지인으로 나온다. 미국인 눈에는 인도네시아인이나 코리안이나 다 고만고만하게 보인 데서 나온 캐스팅일 것이다. 둘째는 빌 선장의 황당무계한 경력. 그는 “한국전에 참전했다”고 털어놓는데, 시대적 배경이 현재인 극중 그의 모습은 기껏해야 40대 중반이다.

마지막으로 전 세계인이 가질 법한 글로벌한 의문. 남미에만 서식하는 아나콘다가 어찌하여 동남아에서 사람들을 잡아먹는 거지? 12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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