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있는 편지/정이현]죽음앞에서 왜곡되는 삶

  • 입력 2005년 3월 11일 16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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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짧은 봄 여행은 잘 다녀오셨는지요. 그 따뜻한 곳에서의 봄날 아지랑이는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은 간간이 꽃샘추위가 몰려들기도 하지만, 봄기운이 점점 짙어가고 있습니다. 그 봄기운에 실려 올해의 경제전망이 어둡지만은 않다는 등 반가운 소식들이 함께 들려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곧잘 황망한 뉴스들도 끼어듭니다. 선생님도 그곳에서 이미 들었다고 하셨지만, 겨울 끝자락의 찬 기운이 남아 있던 얼마 전 한 촉망받는 젊은 여배우의 자살 소식이 전해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 사람의 죽음을 개인의 비극으로 덮어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렇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자살을 둘러싼 갖가지 추측과 풍문들이 가라앉을 줄 모르고 떠도는군요.

한 사람의 죽음과, 그 죽음을 둘러싼 진실들이 세간의 가벼운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과연 ‘진실’이라는 것이 실체가 있기는 한 걸까요. 삶은 죽음 앞에서 얼마나 왜곡되고 덧칠되고 부풀려지는지요.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타인의 자발적 죽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신화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그녀의 죽음은 사회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선생님, 실비아 플라스라는 미국의 여성시인을 아시지요? 서른 살의 나이에 가스오븐레인지 속에 스스로 머리를 넣어 자살한 여자 말이에요. ‘백 년 전에도 어느 여자아이가 지금 나처럼 살아 있었겠지. 그러다 죽어갔으리라. 지금은 내가 현재다.…절정에 이르는 찰나, 태어나자마자 사라지는 찬란한 섬광, 쉼 없이 물에 밀려 흘러가는 모래. 그렇지만 나는 죽고 싶지가 않은 걸.’ 사후 수십 년 만에 출간된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중 한 구절을 읽으면서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오랫동안 그 여성시인에게 부여된 두 가지 이미지는, 당대의 유명시인이던 남편 테드 휴스와의 로맨스, 그리고 그녀가 남성들의 세계에서 희생당한 순교자적 여성 예술가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육성이 담긴 일기장을 들여다보면, 그녀는 참으로 ‘평범한’ 여자였던 것 같아요.

스스로가 인정할 만큼 확고한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만들고 싶어 했던 한편, 세상에서 인정받는 것 또한 몹시 갈망했지요. 예술에 대한 열망과 세속적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자신의 내적 모순에 직면했던 것이 그 젊은 예술가의 초상입니다.

시간은 그녀의 죽음을 상징적 신화로 만들어 버렸지만 그녀가 품은 내적 진실은 어쩌면,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듯 자기 내부의 불안과 질투와 초조함 따위의 사소한 것들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실비아 플라스가 다만 좋은 시인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듯, 이은주라는 사람 역시 그저 좋은 배우로 기록되었으면 합니다. 선생님, 3월입니다. 모든 살아 있는 생물들은 따뜻한 봄기운 속에서 몸을 움직일 것입니다. 돌아간 사람들을 우리가 그렇게 기억하고 떠나보내듯이, 겨울과 작별해야 할 시간입니다. 선생님의 봄날도 더욱 환하시기를 빕니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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