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제니, 주노’ 내 맘대로 보기

  • 입력 2005년 2월 23일 18시 18분


코멘트
《15세 중학생의 임신과 출산을 다뤄 개봉 전부터 찬반 논란을 일으켰던 영화 ‘제니, 주노’가 18일 개봉했다. 시끌벅적한 논쟁에 비해 흥행 성적은 다소 저조하지만, 이 영화는 관객 연령층에 따라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세대 영화’의 전형을 보여줘 흥미롭다. 곧 중학교 2학년이 될 딸을 둔 어머니(42·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와 중3이 되는 여학생(서울 송파구)이 ‘제니, 주노’를 보고 난 뒤 거침없이 말했다.》

▽엄마=15세가 임신한 건 분명 ‘대형 사고’인데, 이 영화에선 완전히 즐거운 ‘임신 놀이’다. 여중생이 임신한 자기 배를 보며 “아! 이게 임신선이구나. 내 몸의 변화가 놀라워”하며 배시시 웃는다. 기가 막힌다. 결혼해 임신한 성인 여자도 몸의 변화에 혼란스럽고 불안해지는데…. 애 아빠(주노)가 부르는 자장가가 흘러나오는 수화기를 태교한답시고 여중생이 배에다 올려놓은 채 마냥 행복해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걔(제니) 진짜 전교 5등 맞나?

▽중3=이 영화는 ‘어린 신부’보다 재미가 없다. 하지만 순수하다. 정말 생명이 소중하단 게 느껴진다. 특히 낙태하는 사진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몸에 임신선이 생긴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전교 몇 등 ‘먹는’ 우리 반 부회장도 남자 친구랑 커플링 끼고 다니고 키스도 했다. 제니가 아기를 낳으려고 분만실로 들어가자 주노가 무릎 꿇고 “제니야!” 하고 외치는 장면에선 출산의 고통이 느껴졌다.

▽엄마=‘생명은 소중하다’고? 낳는다고 다 생명인가. 길러야 생명이지. 정말 생명이 소중하다면, 제니는 학교 때려치우고 애 젖 물리고 기저귀 갈아주면서 키운 다음 검정고시를 봤어야 했다. 하지만 쏙 낳기만 하고 뒤치다꺼리는 엄마한테 맡긴 뒤 자기는 홀가분하게 공부만 한다.

▽중3=제니의 어머니가 (아이를) 키우는 건 당연하다. 어른들도 부모가 맞벌이하면 아이를 할머니가 길러주지 않는가. 학생이 공부하는 건 어른이 직장 다니는 것과 똑같다. 공부도 직업이다. 공부하다가 아기 똥 닦아줄 수는 없다. 부모가 도와줘야 한다.

▽엄마=난 보수적인 사람이 아니다. ‘어린 신부’ 보고도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제니와 주노는 진심이 안 보인다. “추카추카”란 말이나 하고, “순대 먹고 싶어” 하고 여자애가 아양 떨면 남자애가 눈 비비고 일어나 사다주는 게 고작이다.

▽중3=실제 애들은 유치하지만 순수하다.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 받으려고 2월 초부터 아무 여자애나 사귀려는 남자애들도 많다. 초콜릿 못 받으면 우는 애들도 있다. 이 영화는 임신한 학생들이 주위의 도움으로 행복하게 아이를 낳는다는 해피 엔딩이 마음에 든다. 체육관에서 친구들이 제니와 주노의 결혼식을 올려줄 때는 눈물이 났다.

▽엄마=애들이 보고 배우면 큰일이다.

▽중3=여자애들이 이 영화 보고 “와, 나 임신해도 되겠다”고 생각할까. 이건 그냥 보고 즐기는 오락영화일 뿐이다. 어른들은 ‘올드 보이’를 보고 나서 근친상간이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는가.

▽엄마=이런 영화도 교훈이 있기는 하다. 첫째, 맞벌이 부부라도 집 비우면 안 된다. 애들이 그 틈에 덜컥 임신하니까. 둘째, “아는 친구의 친구가 임신했다더라”고 아이가 말하면 그건 십중팔구 자기 얘기다. 셋째, 딸이 고추장을 빵에다 하트 모양으로 발라 먹으면 그건 키 크려는 조짐이 아니라 임신했다는 뜻이다. 내 참….

▽중3=이 영화는 가정 시간에 배운 성 지식이 전부인 순진한 애들은 절대 보면 안 된다. 하지만 그런 애들은 반에서 한 명 정도일걸? 여자애들이 많이 보는 연애소설엔 임신 얘기가 줄줄이 나오지만 아무도 깊이 새기지 않는다. 남자애들 중 ‘성 박사’들은 성인사이트 20개의 주소를 줄줄 외고 다니면서 서로 교환한다. 현실을 부모들이 모른다. 그러니까 이런 영화 하나 나온다고 하면 벌벌 떠는 거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