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문서 공개]與野 정치권 득실계산

  • 입력 2005년 1월 18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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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에서 열린 운영위 회의. 원희룡 최고위원(오른쪽)은 “한일협정은 굴욕 졸속 외교였다”고 비판했으나 박근혜 대표(가운데)는 “역사를 정치적으로 다뤄서는 안된다”고 반박했다. 김동주기자
18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에서 열린 운영위 회의. 원희룡 최고위원(오른쪽)은 “한일협정은 굴욕 졸속 외교였다”고 비판했으나 박근혜 대표(가운데)는 “역사를 정치적으로 다뤄서는 안된다”고 반박했다. 김동주기자
▼林의장 “억울한 사람 구제 정부와 협력”▼

여권은 18일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에 대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보상을 약속하며 한일협정 문서 공개 파장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먼저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가 이날 국무회의에서 ‘한일 수교회담 문서 공개 대책기획단’을 구성해 피해자 보상과 관련한 법률적 검토 등 대응책을 마련토록 지시했다. 이어 임채정(林采正) 열린우리당 의장도 신년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보상 문제에 적극 나설 것임을 밝혔다.

임 의장은 “한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의가 밑바탕이 돼야 하며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면서 “당에서 광범위하게 의견을 수렴하고 정부와 적극 협력해서 억울한 사람을 최소화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열린우리당이 이처럼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데는 나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한나라당의 뿌리인 3공화국 시절의 과오를 참여정부가 앞장서 치유한다는 상징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일협정 문서 공개를 통해 당시 정부의 문제점이 더 부각될수록 한나라당에는 부담이 되지만 여당엔 그만큼 득이 된다는 셈법도 갖고 있다. 여권이 문서 공개 파장을 과거사 진상조사의 정당성을 적극 홍보하는 데 활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총리는 “과거사를 하나하나씩 정리해서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시발점으로 삼자”고 말했고, 김덕규(金德圭) 국회 부의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제야 제대로 과거사가 바로잡히고 있다”고 강조했다.

임 의장은 “많은 억울한 사람을 양산해 놓으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이런 점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과거사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朴대표 “역사를 정치적으로 다뤄선 안돼”▼

한일협정 문서 공개가 한나라당의 내홍(內訌)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朴槿惠) 대표를 중심으로 한 지도부는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악용돼선 안 된다는 입장인 반면 소장파와 비주류 일부는 “당이 적극 나서야 한다”며 다른 목소리를 내고 나섰다.

당시 협정의 최고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과 박 대표의 관계 때문에 당으로서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18일 “역사를 정치적으로 다루려고 하면 자신의 잣대로 편리하게 평가하려는 유혹들이 많지 않겠느냐”며 “역사는 역사가가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당사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의에서 “이 문제는 외교적, 법률적 문제와 역사적 문제가 얽혀 있다”며 “역사적 문제는 역사학자가, 법률적인 문제는 정부가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박 전 대통령과 자신을 한묶음으로 엮어 정치 공세의 소재로 삼으려는 시도를 미리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원희룡(元喜龍) 최고위원은 운영위원회의에서 “한일협정은 굴욕 졸속 외교였다”며 “국민의 피맺힌 한을 당이 풀어줘야 한다. 정부가 개인 배상청구권을 포기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당의 적극 개입을 주장했다. 소장파 모임인 수요정치모임은 이날 긴급회동을 갖고 관련자 사과 및 국회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는 한편 한일협정의 재협상을 촉구했다.

‘6·3 동지회’ 회장인 이재오(李在五) 의원도 성명을 통해 “국회 진상조사특위가 구성돼 문건의 추가 공개, 개인 청구권, 일본의 사과 문제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가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박 대표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일단 박 대표와 연관짓는 해석은 경계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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