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시각장애 윤선혜양, ‘크리스마스 캐롤’ 성공 데뷔

  • 입력 2004년 12월 19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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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극중 소아마비를 앓는 남자아이 ‘팀’역을 맡아 무대에 선 윤선혜양(왼쪽)이 스크루지 역의 배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예술단
뮤지컬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극중 소아마비를 앓는 남자아이 ‘팀’역을 맡아 무대에 선 윤선혜양(왼쪽)이 스크루지 역의 배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예술단
최근 경기 안산 문화예술의 전당 달맞이 극장. 뮤지컬 ‘크리스마스 캐롤’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이 커튼콜을 위해 나오자 유난히 큰 박수가 한 아역 배우에게 쏟아졌다. 스크루지 상점의 직원 ‘밥’의 아들 ‘팀’ 역을 맡은 윤선혜 양(8·인천 혜광초등 1년). 명암만 어렴풋이 구분할 수 있는 1급 시각장애인인 선혜 양은 ‘최연소 뮤지컬 배우’다.

“하나도 안 떨렸어요. 공연 끝나고 박수 소리가 들릴 때 가장 좋았어요.”

이번 무대에는 선혜 양과 함께 특별 오디션을 거쳐 뽑힌 4명의 장애인이 무대에 섰다. 이들 중 선혜 양만 유일하게 솔로로 노래를 불렀다.

악보를 보지 못하는 선혜 양은 녹음된 CD를 듣고 가사와 음을 외워 노래를 익혔다. 9월 초 실시된 오디션 때도 불과 사흘만 노래를 연습하고 오디션에 참가해 캐스팅됐다. 목소리가 맑고 반음(半音)까지 구분해 낼 만큼 음감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선혜 양은 따로 노래 공부를 한 적이 없다. 올 4월부터 시작한 피아노가 음악 공부의 전부였다. 피아노 공부도 점자판을 두드려 글자를 입력하기 위해서는 손가락 힘을 길러야 하기 때문에 시작한 것이었다.

‘친구들이 뮤지컬 배우로 뽑힌 것에 대해 뭐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에휴” 하는 한숨과 함께 “뮤지컬 배우가 됐다고 자랑해도 못 알아 듣는다”고 쓸쓸하게 답했다. 선혜가 다니는 특수학교 친구들이 모두 청각 장애거나 중증 장애이기 때문이다.

또래 아이들을 사귈 기회가 없는 선혜에게 다른 아역 배우들과 어울리게 되는 연습실은 ‘또 다른 학교’인 셈이다. 장애가 없는 다른 아이들과 노는 것이 어색해 극 중 아빠를 맡은 밥(배성일)의 뒤만 졸졸 따라다닌다. 그래도 함께 공연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식사도 더 잘 하고 활기 있어졌다. 조금만 친해지면 다가가서 “사랑해요” 하며 안길 만큼 붙임성도 좋아졌다.

선혜 양은 “연습 기간 동안 내가 나오지 않는 장면에서 가만히 기다릴 때가 가장 힘들었다”며 “그래도 무대에 서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선혜는 “커서 다른 사람을 위해 노래하는 성악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캐롤’은 23∼3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2만∼7만원. 02-523-0984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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