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시인 병상지킨 제자 심언주씨 ‘간병일기’ 감동

  • 입력 2004년 11월 30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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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4일 김춘수 시인이 쓰러지기 며칠 전 함께 사진을 찍은 시인 심언주씨. -사진제공 심언주씨
8월4일 김춘수 시인이 쓰러지기 며칠 전 함께 사진을 찍은 시인 심언주씨. -사진제공 심언주씨
‘82회 생신날이다. 입원하신 지 넉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생신날인 줄도 모르고 누워 계시는 아버지 때문인지 큰따님이 많이 우신다. 케이크를 마련해 놓았지만 불도 켜 드리지 못하는 우리는 모두 우울하다.’ (11월 25일)

지난달 29일 영면한 김춘수 시인의 병상에는 시인의 마지막 제자 심언주씨(42·서울 가락초등학교 교사)가 가족과 함께 병실을 지키며 넉 달 동안 매일 일기를 써 온 사실이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4월 김 시인의 ‘마지막 추천’을 받고 등단한 심씨는 김 시인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운명할 때까지 가족과 함께 그의 투병을 지켜봤다. 심씨의 일기에는 스승을 향한 제자의 존경과 쾌유를 비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혹 듣고 계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번갈아가며 선생님을 불러 보기로 했다. 아무 반응이 없으시다. 무슨 볼일로 아직 우리들에게 돌아와 주지 않으시는 걸까. 속상한 맘에 그저 울기만 할 뿐이었다.’ (8월 5일)

‘무언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이신다. ‘선생님’, ‘할아버지’ 부르면 잠깐 움직임을 멈추신다. 저쪽 세상과 이쪽 세상의 대화.’ (8월 7일)

‘깜짝 놀랐다. 기지개를 켜시다니. 호흡도 혈압도 정상이다. 모니터 어둠덩이들이 뇌 손상부분이다. 선생님은 얼마나 많은 어둠 저쪽의 세상을 보고 계신 걸까. 의사는 내과계통은 정상이나 신경과 계통 회복이 수월치 않으니 기다리자 한다.’ (8월 13일)

‘거짓말처럼 일어나 앉아 계신 모습을 그리는’ 가족과 심씨의 기대도 아랑곳없이 고인의 몸은 9월로 접어들면서 급격히 쇠약해져 갔고 10월에는 무의식 상태에서 이승의 끈을 놓으려는 듯 건조하게 졸아들고 있었다.

심씨는 “선생께서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고 그 속에서 늘 변화하려 노력한 진정한 대가였지만 그만큼 고독했다”며 “새 달(12월)이 오기 전, 따뜻한 날을 골라 저세상으로 가셨다”고 추모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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