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그림인생 첫 화집낸 남정 박노수 화백

  • 입력 2004년 11월 2일 18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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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화집을 낸 남정 박노수 화백. 그는 노환으로 투병 중이지만 자신의 그림 속 주인공처럼 맑고 단아했다. -허문명기자
생애 첫 화집을 낸 남정 박노수 화백. 그는 노환으로 투병 중이지만 자신의 그림 속 주인공처럼 맑고 단아했다. -허문명기자
남정 박노수(藍丁 朴魯壽·77·예술원 회원) 화백이 최근 생애 첫 화집을 냈다.

작가라면 으레 일생에 화집 서너 권은 냄직한데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첫 화집이라니…. 세속과 화통하는 법 없이 살아 온 그답다. 268쪽에 140점의 작품이 실린 대형 화집(가나아트)에 담긴 노송, 야트막한 산, 청결하게 빗어 넘긴 여인의 머릿결과 잔잔한 눈매, 외로운 소년의 모습 등에는 ‘남정화’라는 독특한 화풍을 만든 그의 평생 작업이 담겨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옥인동 그의 집을 찾았다. 1년 반 전, 갑자기 노환으로 쓰러진 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줄곧 누워 생활한다는 그가 이날은 모처럼 기운을 차리고 앉았다. 하얀 누비 한복에 갈색 모자를 쓴 얼굴이 맑고 단아했다. 환자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몇 차례 말길을 놓쳤다. 그때마다 노화백은 “기억이 옛날 같지 않아”라며 허허 웃었다.

대쪽같이 차가운 성격에 아무하고나 쉽게 어울리지 않는 남정. 골프, 바둑, 술, 텔레비전,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림에 방해가 된다 싶은 일은 일체 삼갔다. 작품에 전념하기 위해 정년퇴직을 10년 앞둔 1982년 서울대 교수직까지 버린 그는, 자신의 삶 그대로 순도 높은 인품이 담긴 선비적 화풍을 보여 왔다. 그리고 화폭 속 주인공들처럼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나직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미소, 선(禪)문답 같은 어투는 달관에 이른 그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듯했다. 평생 가장 좋았던 일을 물었을 땐 “글쎄…” 하던 남정에게 제일 힘들었던 때를 묻자 “평생을 힘들게 살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인생사가 그저 무(無)야 무”라며 중얼거리는 그의 표정은 마치 이 세상에는 없는 신선(神仙)의 얼굴 같았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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