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 칼럼]문화수출국이 할 일

  • 입력 2004년 10월 1일 18시 27분


일본에서 불고 있는 한류(韓流) 붐을 보면 일본문화 개방 문제가 새삼 생각난다. 1998년 처음 이뤄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앞두고 얼마나 반대가 많았던가. 한국 대중문화가 일본에 잠식되고 일본의 저질 문화가 유입되어 해악을 불러올 것이라는 걱정이었다. 우리 정부는 1999, 2000, 2003년 등 네 차례로 쪼개어 개방을 했다. 아직도 개방하지 않은 분야가 남아 있는 상태다.

▼한류를 꽃피우려면▼

일본 대중문화는 한국에서 별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개방 이전에 제기됐던 우려는 일단 ‘쓸데없는 걱정’이었던 것이다. 손익계산을 떠나 외부 문화에 빗장을 걸어 잠그는 것은 편협한 자세다. 한일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온갖 뜸을 들여 가며 일본문화 개방을 미뤄 온 것은 속 좁은 처사였음에 틀림없다. 일본의 한류 붐에 고무되는 한편으로 우리의 ‘닫힌 마음’이 마음에 걸린다.

한류 붐은 아시아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와 같은 문화권이기 때문에 공감 얻기가 더 쉬울 것이다. 한류에 열광하는 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민족적 우월감이 우리에게 전혀 없다고 말하긴 어렵다. 한국의 인기 스타들이 환영받는 모습에 자부심을 갖게 되고 한류의 경제 효과도 반갑게 느껴진다.

한국이 그 정도로 ‘문화수출국’이 되었다면 꼭 살펴볼 일이 있다. 우리가 상대방 문화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의 문제다. 동남아시아 같은 곳에서 한국인이 납치되는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현지 실정을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사건이 종료되면 그걸로 끝이다. 처음부터 알려고 하는 마음이 없다.

선진국들은 후진국에 일부러 유학을 보내는 등 지역전문가를 키운다고 하는데 우리는 몇몇 강대국을 빼놓고는 지역전문가가 없다. 우리가 알려고도 하지 않는 아시아 국가에 한류를 수출하면서 겉으로만 아시아의 연대를 강조하는 것이 상대방 눈에 어떻게 비칠까. 민족적 우월성을 앞세운 일방통행 식의 문화수출은 고통과 억압의 근대사를 겪어 온 우리가 결코 답습해선 안 되는 일이다.

한류 붐을 앞으로 더욱 확대하고 심화시키기를 누구나 원할 것이다. 우리 것은 내보내고 남의 것은 안 받겠다는 자세로는 한류의 장래를 기약할 수 없다. 아마도 ‘반짝 현상’에 그치고 말 것이다.

아시아 각국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이해하려 하고 진심 어린 교류를 해 나가야 한다. 유네스코가 몇 년 전 문화다양성 선언을 하면서 강조한 문화다원주의가 바로 이것이다. 이런 풍토가 국내에 자리 잡을 때 한류도 더욱 힘을 얻고 아시아의 벽을 넘어 세계적인 공감을 획득할 수 있다.

남에게 문을 닫아걸고, 남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 ‘폐쇄 현상’은 국내 사회 현실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 시대 최대의 화두인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제3의 길’을 찾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서로 등을 돌리고 있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유네스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화는 예술이나 문자의 형식뿐 아니라 함께 사는 방법으로서의 생활양식이자 가치’이다. 문화적으로 폐쇄성을 보이는 국가는 다른 분야에서도 같은 성향을 보일 수밖에 없다. 국가적 과제인 국민소득 2만달러, 3만달러를 달성하려면 경제적 노력에 앞서 그 바탕이 되는 문화적 토양, 즉 다양성과 다원성을 키워 나가는 게 절실하다.

▼잘못된 길을 가는 한국▼

로마제국이 융성했던 비결은 로마를 침략해 온 적마저도 자기편으로 동화시킨 포용력에 있었다. 로마는 전쟁에 패한 사람을 노예로 삼지 않고 시민권을 주어 로마제국의 일원으로 만드는 원칙을 고수했다. 일찍부터 다원주의를 실천한 나라가 로마였다.

반면에 로마에 앞서 위대한 문명을 만들어 낸 그리스는 단결을 모르는 국가였다. 저마다 잘났다고 도취된 나머지 분열과 대립을 계속하다가 주변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역사의 승자는 단연 로마다. 우리는 어느 쪽 길을 가고 있을까. 길을 잘못 들었다면 지금이라도 빨리 바꿔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