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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9월 9일 16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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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경북 봉화군 낙동강 상류 강변에 있는 ‘승부역’을 기억하시는지. 동대구와 강릉을 오가는 영동선 열차를 타면 봉화와 태백 구간에 있는 작은 역이다. 이 글귀는 이 역 철로변의 바위벽에 흰 페인트로 씌어있는 한 편의 짧은 시(詩)다.
승부역은 겨울이면 철도청이 운행하는 ‘환상선 눈꽃열차’의 중심 역이 되면서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된 첩첩산중의 산골 역이다. 협곡의 강안 바위벽을 절개해 간신히 확보한 공간에 들어선 철로와 역은 낮은 지붕의 벽돌조 슬래브 건물의 역무실과 플랫폼만 설치한 한 평반짜리 대합실이 전부.
역과 마을 사이에 낙동강이 가로 놓여 역을 오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한다. 주변 승부리 마을의 가구 수는 30여호. 이 마을은 강 하류 봉화 쪽은 험한 산세와 낙동강에 가로막혀 아직 길이 없고 강 상류 석포면에서 진입하는 비포장도로가 유일하다.
주민들은 봉화군 춘양장에 다녀올 때 열차를 타는 것이 고작이다. 2년 전만 해도 석포면으로 통학하는 초등학생이 2명 있었지만 그마저 태백으로 옮겨간 지금은 고정승객이 한 명도 없다. 지나는 열차도 대부분 화물차다. 이 역에서 서는 객차는 2회뿐. 그나마도 30초다. 그런 탓에 최근에는 등급마저 ‘역’에서 ‘신호장’(여객은 없고 교행만 하는 곳)으로 격하됐다.
그러니 여기서 근무하는 철도원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앞으로는 낙동강, 뒤로는 절벽, 주변은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이 곳. 유일하게 숨통 틔워주는 것이 하늘인데 그나마도 협곡지형에 가려 조각난 하늘뿐이다.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은 그런 심정을 그대로 담아냈다. 1963년부터 19년간 근무한 김찬빈씨가 1965년에 쓴 것인데 원문은 이렇다. ‘승부역은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이나 영동의 중심이요 수송의 동맥이다.’ 하지만 국가의 대동맥인 철도를 지킨다는 자긍심도 담겨있다.
오지의 조그만 역은 1998년 12월 ‘환상선 눈꽃열차’가 운행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중앙 태백 영동 이 세 선 철도를 따라 운행하며 청량리역을 출발, 제천∼백산∼영주를 경유해 청량리로 돌아오는 이 당일코스 관광열차의 중심역이 승부역이었던 것. 한겨울 눈 덮인 산하를 달리는 열차는 승부역에서 정차했고 강 건너 펼쳐지는 시골장에서 물건도 사고 식사도 하는 코스다.
그러나 겨울이 아닌 계절에 정기 열차 편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강릉행과 동대구행이 한 편씩(오전 9시40분, 오후 6시10분)만 서기 때문. 마을버스도 없어 유일한 출구인 석포면을 오가기도 쉽지는 않다.
짧은 기차여행이라도 즐기려면 추전∼춘양 구간을 달리는 낙동강 협곡열차를 타고 승부역을 지나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승부 양원(임시승강장) 분천 역 주변은 도로가 없어 협곡의 비경이 감춰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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