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치장의 역사’… 고통과 학대로 단장한 美의 욕망

  • 입력 2004년 5월 14일 17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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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릴리트 부인’.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에서는 풍성하고 긴 금발이 세련미의 상징이었다. 레몬즙, 수레국화를 달인 탕약으로 머리를 감고 유황 가루로 된 약물을 바르기도 했다. 사진제공 김영사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릴리트 부인’.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에서는 풍성하고 긴 금발이 세련미의 상징이었다. 레몬즙, 수레국화를 달인 탕약으로 머리를 감고 유황 가루로 된 약물을 바르기도 했다. 사진제공 김영사

◇치장의 역사/베아트리스 퐁타넬 지음 김보현 옮김/158쪽 1만2900원 김영사

고대 이집트에서 향수와 화장품, 몸치장은 무엇보다도 의식을 위한 것이었다.

향수와 화장품은 신상(神像)의 단장과 같은 종교의식에 사용됐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과 닮기 위해 화장을 했다. 중세에는 화장한 여자를 조물주가 준 외모를 바꾸려는 오만한 여자라고 비난했지만 예뻐지려는 여자의 욕망을 계속 막을 수는 없었다. 모나코 공주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단두대에 오르기 전에도 화장을 했다.

저자는 화장, 머리, 체모, 손과 손톱, 목욕, 향기 등의 주제별로 여자들이 아름다움을 가꾸고, 때로는 아름다움을 ‘위장’하기 위해 애써온 ‘처절한’ 역사를 흥미롭게 기록했다.

▽화장=19세기에는 침울한 분위기가 유행했고 창백함에 대한 애착은 극에 달했다. 이런 시대적 기준에 따라 유령이나 결핵 환자처럼 보이는 인간들이 등장했다. 극단적으로 창백해 보이기 위해 가금류의 피와 설치류의 분비물로 만든 미용 마스크, 젖먹이 아기의 소변으로 만든 로션, 신선한 인분의 증기를 쐰 헝겊 마스크 등의 화장품들이 애용됐다.

▽머리=지지고, 고불거리게 하고, 부풀리고, 세우고, 핀을 꽂고, 크림으로 칠하고, 가루를 잔뜩 뿌렸다. 꽃이나 새 장식, 깃털, 실, 레이스 등이 부착된 금속 구조물을 얹은 머리카락은 그야말로 이(蟲)들이 서식할 수 있는 최고의 둥지였다. 부인들은 두피의 가려움을 참기 어려워 끝 부분이 상아로 된 작은 지팡이를 들고 다니며 머리를 긁어야 했다.

▽털=털은 인간을 적나라하게 포유류로 끌어내린다. 털 뽑기는 아주 일찍부터 시작됐다. 처음에는 핀셋 대신 홍합 껍데기가 사용됐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들에게 털이 없다는 이유로 털은 불결한 것으로 간주됐다. 로마의 귀부인들은 온몸과 얼굴의 털은 물론 콧구멍 속의 털까지도 모조리 뽑았다.

▽향기=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장미와 오렌지나무 꽃, 월하향, 재스민 향이 나는 크림을 손과 얼굴에 발랐다. 가장 기초적인 위생도 지켜지지 않던 17세기부터 기름기 많은 분과 두꺼운 반죽, 강한 향수를 바탕으로 한 짙은 화장술이 정착됐다. 자극적인 향으로 악취를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

▽여성의 몸=중세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여성의 육체는 다소 조이는 의상에 억눌려 있었다. 그 후 여성 해방, 도덕관념의 해방, 여가 생활의 등장 등으로 기존 원칙은 뒤집어졌다. 점점 더 격렬한 스포츠를 즐기고 열심히 근육을 발달시키며 식이요법으로 살을 뺐다. 이제는 신체의 조형이 내부로부터 이뤄지게 된 것이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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