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철/ “아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 입력 2004년 5월 2일 18시 47분


얼마 전 김수환 추기경이 거푸 ‘수난’을 당한 적이 있다.

여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나라의 전체적 경향이 반미 친북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 것이 빌미가 돼 ‘민족의 걸림돌’이란 얘기까지 들었다. 당시 사이버 테러도 잇따랐다.

또 사순절 기념 강론에서 “탄핵문제로 국론이 분열돼서는 안 된다”고 한 데 대해 함세웅 신부는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읽지 못하셨다. 그분의 사고는 다소 시대착오적이라고 판단된다”고 비판했다.

이런 비판을 받으면서 추기경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최근 그 궁금증이 풀렸다.

김 추기경은 지난달 28일 동국대 불교대학원 초청 특강에서 “비판한 분에게 감사드린다. 많은 교훈을 주는 말이다. 강연에서 ‘남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했는데 비판도 듣고 욕을 먹는 것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삶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남의 비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며 김 추기경은 역시 이 시대의 정신적 지주이자 귀감이 되는 어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김 추기경의 일관된 가르침은 ‘양심대로 올바르게 진리와 정의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코 어려운 얘기가 아니다. 누구나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할 규범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장면 1=1일 오전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1차로를 빠르게 달리던 차량들이 갑자기 2차로로 방향을 바꾸었다. 원래 추월하거나 급할 때 이용해야 하는 1차로를 초보로 보이는 운전자가 제한속도에 훨씬 못 미치는 속도로 앞만 보고 차를 몰고 있었다.

▽장면 2=지난주 일요일 한 음식점.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았다. 한 어린이가 소리를 지르며 레스토랑 안을 뛰어다녔다. 아이 부모는 제지는커녕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듯 지켜만 보고 있었다.

특파원 시절 정반대의 상황도 자주 경험했다.

▽장면 A=독일 북부에서 남부까지 연결되는 아우토반(고속도로). 편도 3차로인 고속도로에서 1차로로 달리는 차를 거의 볼 수 없었다. 포르셰나 BMW, 벤츠 등이 간혹 1차로에 들어갔지만 앞선 차를 추월하면 곧바로 2차로로 되돌아갔다.

▽장면 B=네덜란드의 한 레스토랑. 손님들은 옆 사람도 잘 듣지 못할 정도의 목소리로 즐겁게 얘기했다. 한 어린이가 무슨 불만이 있는지 부모의 경고 눈빛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 칭얼댔다. 아버지가 일어서 “미안하다”고 말한 뒤 엉덩이를 세게 몇 차례 때렸다.

선진국 시민은 대부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 배운 것을 생활 속에서 실천한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이를 철저히 지킨다.

미국 스탠퍼드대 제프리 페퍼 교수는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실천을 강조한다.

자신에게는 너그럽고 남에게는 엄격한 이중 잣대를 쓰고 있지 않은지, 말과는 달리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 돌아볼 일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자녀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

김상철 경제부 차장 sckim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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