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숨은 주역]<2>바둑기사 조훈현9단 부인 정미화씨

  • 입력 2004년 1월 9일 18시 40분


코멘트
정미화씨는 사상 첫 세계대회였던 1989년 제1회 잉창치배 대회에서 남편이 녜웨이핑(攝衛平) 9단을 상대로 결승 4, 5국을 치뤘을 때가 가장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말한다. 당시 조 9단은 적지나 다름없는 싱가폴에서 대국을 벌여 우승했다. 김미옥기자
정미화씨는 사상 첫 세계대회였던 1989년 제1회 잉창치배 대회에서 남편이 녜웨이핑(攝衛平) 9단을 상대로 결승 4, 5국을 치뤘을 때가 가장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말한다. 당시 조 9단은 적지나 다름없는 싱가폴에서 대국을 벌여 우승했다. 김미옥기자
《바둑기사 조훈현(曺薰鉉·52) 9단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면 뜻밖에도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바로 조 9단의 부인 정미화(鄭美和·47)씨.

“남편을 찾는 외부 연락은 모두 제가 받아서 처리해요. 조 국수(國手)는 ‘기계치’인 데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걸 싫어하거든요.” 정씨는 대국 날짜 조정, 외부행사 초청, 취재 요청 등 조 9단의 대외활동을 모두 처리하는 매니저 역할을 한다.

대국이 있는 날이면 운전면허가 없는 조 9단을 대국장까지 편안하게 차로 ‘모시는’ 운전사 노릇도 한다.》

“지금은 그래도 좀 덜하지만 조 국수가 중요한 바둑을 두는 날이면 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요. 집에서 기다리기 뭐해서 아예 대국하는 시간 내내 검토실에 나가 있던 적도 많았습니다.”

바둑을 전혀 모르는 그가 온종일 검토실에 앉아 있기란 곤혹스러운 일. 하지만 다른 기사들이 ‘조 국수가 유리하다’ ‘많이 따라잡았다’는 등의 대화를 나눌 때면 귀를 쫑긋 세우고 조마조마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 9단은 1984년 당시 열 살이던 천재소년 기사 이창호를 내제자(內弟子)로 받아들였다. 이창호에게 바둑을 가르쳐준 스승은 조 9단이지만 그가 17세가 될 때까지 뒷바라지 해준 사람은 바로 정씨였다.

“둘째애를 낳고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벌써 집에 와 있는 겁니다. 그 전 잠깐 얘기를 듣긴 했지만 황당한 일이었죠. 시부모님도 ‘젊은 나이(32세)에 제자를 두는 건 너무 이르다’고 반대했어요. 하지만 바둑계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조 국수의 뜻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씨는 남편과 이창호 9단을 ‘조 국수’ ‘이 국수’라고 불렀다. 시부모님과 남편, 아이들까지 대가족을 건사하기도 벅찬 주부에게 ‘이 9단과 함께한 8년’은 쉽지 않은 나날이었다. 정씨는 혹 자신이 이 9단에게 소홀한 점이 없었는지 늘 노심초사했다. 특히 한집에 살면서 조 9단과 이 9단이 바둑계의 맹주 자리를 놓고 도전기를 벌였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시간.

“둘 다 이겼는지 졌는지 겉으로 티를 내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두 사람이 도전기를 두고 집에 같이 들어오는데 누가 이겼는지 알 수가 있어야죠. 물어보기도 뭐하고. 그저 제 속만 썩었죠.”

이 9단은 지금도 정씨를 ‘작은어머니’라고 부른다. 10대 시절 정성껏 뒷바라지해준 정씨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피를 말리는 승부사에게 아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프로의 승부란 것이 이기든 지든 비장하고 긴장의 연속 아닙니까. 10시간 넘게 바둑을 두고 오면 조 국수의 머리에서 열이 후끈후끈 나는 것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조 국수가 집에서만큼은 마음을 놓을 수 있도록 집안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게 제 일이에요.”

민제(24) 윤선(20) 승희(18) 등 1남2녀는 ‘기재(棋才)가 없어’ 바둑의 길로 나서진 않았다.

“이제 아이들도 다 컸고 남편이 원하는 만큼 뛰어난 기재를 가진 어린이가 있다면 내제자로 받아들이고 싶어요. 그게 남편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뒷바라지니까요.”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조훈현9단이 말하는 나의 아내 ▼

“집 안팎의 일을 다 알아서 해주니 저는 편하게 바둑에만 전념할 수 있죠.”

동년배의 남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조훈현 9단도 아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쑥스러워 했다.

“지금 이 집(서울 종로구 평창동)을 지을 때도 저는 그저 둘러보기만 했고 모두 아내가 맡아서 했죠.”

그는 유일하게 등산 갈 때만 휴대전화를 챙겨간다. 딱 한 통화를 거는데 바로 아내에게 거는 전화다.

신혼시절 다정하게 껴안고 있는 조훈현 정미화 부부. 당시 조 9단은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사진제공 타이젬

“여기 어딘데 데리러 오라”고 하기 위해서다.

“대국이 없는 날엔 집에 주로 있는데 아내가 성격이 활달하고 애교가 많아 늘 유쾌하죠.”

그때 옆에 있던 부인 정미화씨가 “남편은 대국 전에 예민하게 굴지도 않고 집에서 짜증내는 일도 없어 편하다”고 칭찬하자 조 9단은 “그야, 집에서 뭐 소리 높일 일이 없는데…”라고 화답했다.

조 9단은 1980년 결혼하기 전 ‘시부모를 모실 것’ ‘아이를 넷 이상 낳을 것’ ‘양가에서 결혼 반대가 없을 것’ 등을 아내와 합의(?)했다며 “지금까지 ‘아이 하나’만 충족되지 못했다”고 농담을 던지며 크게 웃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