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찾은 이날 오후 선생의 병실에는 둘째아들 피수영씨(60·서울아산병원 진료부원장)와 후배 시인 박명숙씨가 와 있었다.
“얘, 거기 냉장고에 밥 있어. 데워서 먹어라.”(아버지)
“나중에 먹죠, 뭐.”(아들)
“아니야, 지금 먹어.”(아버지)
점심 때가 훌쩍 지난 시간, 선생은 환갑 나이 아들의 끼니를 걱정하고 있었다.
박명숙씨가 “선생님, 미국에 있는 서영이(딸)한테 연락했어요?”하고 묻자 선생은 “이렇게 멀쩡한데 서영이가 올 필요가 뭐 있어”라고 답했다. 선생의 목소리는 또렷했으나 병중이라 기력은 떨어진 듯했다.
병실 문에는 ‘면회는 짧게 해 주세요’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입원 중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매일 여러 차례 문병객들이 왔다갔지만, 선생은 매번 귀찮은 내색도 없이 “아이고, 바쁜 사람들을 여기까지 오게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선생은 해마다 첫눈이 오면 50년 동안 친하게 지내온 김재순 ‘샘터’ 발행인 겸 고문(80)과 누가 먼저 전화하는지 내기를 해왔다.
“오늘은 김재순씨가 먼저 전화를 해왔어요.”
눈 쌓인 창밖 풍경을 보며 선생은 미소를 지었다.
선생이 자신의 시 중 가장 좋아한다던 ‘너’가 떠올랐다.
‘눈보라 헤치며/ 날아와// 눈 쌓이는 가지에/ 나래를 털고// 그저 얼마동안/ 앉아 있다가// 깃털 하나/ 아니 떨구고// 아득한 눈 속으로/ 사라져 가는 /너’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같이 걷고 싶다”(수필 ‘나의 사랑하는 생활’ 중)고 했던 선생의 오래 전 바람이 이번 겨울에 꼭 이뤄졌으면 싶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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