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인 "풍만에서 요염으로"

입력 2003-12-03 15:44수정 2009-10-10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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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인(美人)상이 삼국시대의 풍만함에서 고려시대의 우아함, 조선시대의 요염함 순으로 변천해갔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홍선표(洪善杓) 교수는 3일 오후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주최로 열린 '한국인의 신체관: 그 어제와 오늘'이라는 학술대회에서 '한국 미인화의 신체 이미지'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이같이 분석했다.

홍 교수는 "선녀와 궁녀 등이 묘사돼 있는 고분벽화와 불화 등의 그림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미에 대한 기준이 '후육미(厚肉美)'에서 '전아미(典雅美)', 그리고 '염요미(艶妖美)'로 변해 왔다"며 "조선 시대에는 사대부들 사이에 미인화가 확산되면서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요염함이 기준이 됐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또 "미인관에 대한 묘사는 고려시대부터 본격화됐으며 체형의 경우 '비만형'에서 '수척형'으로 변화했다"며 "고전적 미인상은 16~18세 나이의 성적인 생식 능력이 생기기 시작하는 '소녀'를 '진미인(眞美人)'으로 가장 아름답게 여겼다'고 덧붙였다.

홍 교수는 고전적으로 아름다운 얼굴과 눈썹, 손 등을 묘사할 때 쓰인 비유물도 소개했다.

예를 들어 얼굴은 재생과 풍요의 상징인 '달'이나 완상물인 '꽃'으로, 눈썹은 '초승달'과 '버들잎'으로 비유됐으며 눈은 가늘고 긴 모양, 입술은 붉고 작은 것이 매력적이었다.

또 머리는 구름 같이 높고 풍성한 양태, 피부는 눈처럼 흰 상태, 어깨는 좁은 모양, 목은 길고 수려한 목덜미가 예찬됐고 가늘고 유연한 허리와 가늘고 흰 손이 높이 평가됐다.

홍 교수는 "인류 사회가 가부장제로 전환되면서 미녀의 조건은 남성의 욕망과 환상이 만들어낸 픽션이며 이들의 욕구에 의해 형성되고 소비됐다"고 주장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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