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트릭의 여왕…1952년 크리스티 ‘쥐덫’ 初演

  • 입력 2003년 11월 24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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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공주로 있던 1952년 처음 막이 오른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극 ‘쥐덫’. 그 ‘쥐덫’은 여왕이 즉위 50주년을 맞은 뒤에도 계속 공연돼 최장기 공연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 작품은 영국 왕실과 인연이 깊다.

1947년 조지6세의 모후 메리는 80회 생일을 맞아 BBC에 크리스티의 작품을 방송으로 듣고 싶다는 뜻을 넌지시 비쳤다. 메리는 그녀의 열렬한 팬이었던 것. BBC의 요청을 받은 크리스티는 1주일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 원제는 ‘세 마리의 눈먼 생쥐.’

크리스티는 조용하고 수줍은 주부였다. 그녀는 추리소설의 대가답지 않게 폭력과 피를 몹시 싫어했다. 그녀는 “일생 동안 살인자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그래선지 그녀의 작품에는 피비린내나 시체 썩는 냄새를 맡을 수 없다.

그런 그녀가 1926년 갑자기 실종됐다. 신문은 연일 대서특필했고 경찰이 수배에 나섰다. 실종 11일 만에야 그녀는 휴양지의 호텔에서 발견됐는데 숙박계에는 남편과 눈이 맞은 여성의 이름이 기재돼 있었다.

당시 잠적이 남편에 대한 복수극이었는지 아니면 작가적 명성을 높이기 위한 자작극이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녀는 끝내 침묵을 지켰다.

크리스티는 남편이 자기보다 나이 어린 여자와 놀아난 것에 대해 분개했는데 그녀 자신도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15년 연하의 고고학자와 재혼했다. “왜 고고학자냐고요? 내가 나이를 먹을수록 나를 더 소중하게 여기지 않겠어요.”

그녀는 1976년 마지막 작품 ‘커튼’을 내놓았다. 여기서 주인공인 포와로 탐정은 죽음을 맞는다. “내가 죽은 뒤에 다른 사람이 포와로를 등장시키는 게 싫어요. 이언 플레밍이 죽은 뒤에도 계속 설쳐대는 제임스 본드는 정말 끔찍하답니다.”

‘커튼’이 발표되자 뉴욕 타임스는 1면에 포와로의 부고 기사를 실었다. 포와로는 버킹엄 궁, 국회의사당, 런던탑과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실존인물’이었던 것이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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