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씨비스킷'…경주마의 전설

  • 입력 2003년 11월 20일 16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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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브에나 비스타인터내셔널코리아
사진제공 브에나 비스타인터내셔널코리아
‘씨비스킷’은 미국이 고단하고 힘들었던 1930년대 공황기에 실존했던 경주마의 이름이다. 굽은 다리, 왜소한 키 등 신체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씨비스킷은 불굴의 정신력을 발휘해 1936년부터 5년 동안 여러 경주에서 우승하는 대활약을 펼쳤다. 당시 미국인들은 고난의 시간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서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한 마리 말에게서 배웠다. 희망의 의미를 되찾아준 씨비스킷은 ‘미국 역사상 가장 특별한 스포츠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이 영화에선 실질적으로 말과 사람이 공동 주인공이다. 씨비스킷과 말을 중심으로 뭉친 세 주인공들이 각자 자기 앞의 시련을 딛고 승리를 거두는 과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 팀으로 만난 이들은 기수(騎手) 자니 ‘레드’ 폴라드(토비 맥과이어), 조련사 톰 스미스(크리스 쿠퍼), 마주(馬主) 찰스 하워드(제프 브리지스). 이들의 뛰어난 연기도 영화의 실제감을 더해준다.

씨비스킷은 명마의 후손이지만 왜소한 체격에 천성마저 게으르다고 마주들에게서 천대를 받았다. 공황기의 여파로 가족과 헤어져 고아처럼 자란 ‘레드’는 밤에는 무명 권투선수로, 낮에는 실패한 경마기수로 살고 있었다. 누구보다 말과 친했던 스미스는 산업화로 인해 야생의 초원이 사라지면서 삶의 터전을 빼앗겼고, 자동차 대리점으로 성공한 하워드는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고 아내마저 떠나보낸다. 말은 작은데 기수는 크고, 조련사는 늙은 데다 마주는 말을 전혀 모른다. 결국 이 팀은 모든 약점을 딛고 큰일을 해낸다.

그들의 힘이 돼준 것은 바로 ‘상처를 입었다고 삶을 접어서는 안 된다’는 소중한 교훈이었다. 영화는 이들의 상처받은 삶을 차례로 보여준 뒤 씨비스킷을 통해 한 팀으로 결속하고, 서로를 도우며 각자의 고통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압권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듯 생생하게 촬영한 경주 장면. 말의 생명력과 경주의 역동성을 전달하는 장대한 화면을 통해 영화라는 장르의 재미와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그 덕분에 영화가 끝난 뒤 극장을 나서도 경주마들의 발굽소리와 헐떡대는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제작사는 말의 캐스팅부터 실제 촬영까지 ‘네 발 연기자들’에게 스타 못지않게 엄청난 공력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흑백사진과 컬러영상을 교차시키며 내레이션으로 잔잔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이 영화에선 여성 연기자들의 역할이 미미하다. 주인공의 로맨스나, 감동을 과장하려는 극적인 연출이 없어 울림이 더 깊다. 물론 같은 이유로 지루해할 관객도 있겠다.

‘빅’의 각본을 썼으며, ‘플레전트빌’ ‘데이브’를 연출한 게리 로스 감독이 로라 힐렌 브랜드의 논픽션 베스트셀러를 각색해 만든 작품. 2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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