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비구니회장 명성스님“시주만 받아서야… 밥값 해야죠”

  • 입력 2003년 11월 9일 19시 08분


“조계종이 발전하려면 ‘비구와 비구니’라는 두 날개가 함께 제 역할을 잘해야 합니다.”

지난달 22일 전국비구니회장에 취임한 명성(明星·73·사진) 스님은 8일 동안거(冬安居) 결제를 발표하며 언론과 첫 공식인터뷰를 가진 자리에서 “현재 조계종 승려의 반(7000여명)이 넘는 비구니들이 조계종의 앞날을 이끌 동력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북 청도 운문사의 승가대학장과 승가대학원장도 맡고 있는 그는 “나이 70이 넘었고 운문사 일도 바빠 회장직을 여러 차례 고사했는데도 비구니회 원로스님들이 먼길을 찾아와 간곡히 부탁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며 “서산대사가 ‘발백심미백(髮白心未白·머리는 허옇게 세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이라고 말한 대로 나이보다 30년 젊은 마음을 갖고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8월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개관한 비구니회관을 비구니들의 수행 교육 포교 복지의 중심으로 삼겠다는 ‘서원(誓願)’을 밝혔다.

명성 스님은 1977년부터 운문사 주지를 맡아 강원(講院)을 세우고 건물 29동(棟)을 신축하는 등 운문사를 대형 비구니 사찰로 키웠다. 현재 강원의 학인(學人·공부하는 승려)만 260여명으로 이는 비구 승가대 중 최대 규모로 꼽히는 해인사보다 더 많다.

“제가 학인에게 강조하는 건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입니다. 스님이 신자들의 시주만 받아서는 안 되며 제 밥값을 해야죠.”

운문사 학인들은 공부 틈틈이 밭에서 배추 무 고추 등 자급용 채소를 재배한다. 김장용으로 재배하는 배추만 1만포기가 넘는다.

그는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즉사이진(卽事而眞)’을 강조했다. ‘일을 함에 있어 항상 진실돼야 한다’는 뜻으로 선방에 앉거나 공부할 때만 아니라 생활 자체가 수행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명성 스님은 해인사 통도사처럼 선원(禪院) 율원(律院) 강원을 두루 갖춘 비구니 총림 설립 계획을 묻자 “현 단계에선 내실을 다져 ‘비구니들이 참 잘한다’는 평가를 듣는 게 더 중요하다”며 “비구와 선문답을 할 수 있는 비구니 ‘선지식’이 나오고 사회복지 등 대외활동도 더 활발히 펼쳐나가면 자연히 총림 설립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도=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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