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627>凶 年(흉년)

  • 입력 2003년 10월 14일 17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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凶 年(흉년)

凶-흉할 흉 (감,겸)-흉년들 겸

飢-굶주릴 기 蟲-벌레 충

照-비칠 조 類-같을 류

한자의 214개 部首(부수·일명 변)중에는 좀 생소한 녀석도 꽤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감이다. ‘감’으로 읽는데 위를 향해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입을 벌리다’는 뜻과 함께 그릇처럼 생겼다 하여 ‘그릇 감’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본디 감은 구덩이를 뜻했다. 과연 영락없는 구덩이의 모습이 아닌가. 무슨 구덩이일까. 사냥을 위해 파 놓은 ‘함정’이다. 따라서 감자로 이루어진 한자는 거의가 물건을 ‘가두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凶자는 바로 함정에 산돼지나 노루 따위의 사냥감이 빠져있는 형상이다. 사냥꾼이야 좋겠지만 사냥감으로서는 얼마나 긴장되고 난감하겠는가. 그래서 凶은 ‘흉하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凶計(흉계) 凶器(흉기) 凶事(흉사) 凶惡(흉악) 凶暴(흉폭) 吉凶(길흉) 陰凶(음흉)이 있다.

凶年은 농작물의 作況(작황)이 좋지 않은 해를 말한다. 凶歲(흉세) 또는 (감,겸)年(겸년)이라고도 하며 좀 심하면 荒年(황년), 더 심하면 飢勢(기세)또는 飢年(기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表記上(표기상)의 차이일 뿐 실제 凶年이 들면 곧바로 飢年으로 연결되었다. 워낙 먹을 것이 부족했던 옛날 平年作(평년작)이 돼도 배불리 먹을 수 없을 판이었으니 혹 凶年이라도 들면 그것은 곧 饑饉(기근)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凶年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기후다. 가물거나 올해처럼 비가 많다든지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면 凶年이란 놈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또한 病蟲害(병충해)가 창궐해도 凶年을 피할 수 없었다. 농약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 한 번 병마가 쓸고 간 들판은 벼가 벌겋게 타서 죽었다. 사람의 질병도 한 몫 했다. 콜레라나 장티푸스 같은 돌림병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가면 饑饉이 그림자처럼 따랐다. 사람이 죽어 일손이 부족하게 된 데다 때로 감염지역으로부터 강제이주를 당하게 되어 耕作(경작) 자체가 불가능하였던 것이다.

올해 들어 유난히 잦은 비로 日照量(일조량)이 부족했던 데다 사상 類例(유례)없는 태풍피해까지 겹쳐 23년 만에 凶年을 맞게 됐다는 소식이다. 쌀 수백만 석의 감산이 예상되며 主穀(주곡)을 제외한 다른 농작물도 함께 凶作을 면치 못하게 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孟子(맹자)에 의하면 인간의 品性(품성)이 豊年(풍년)이 들면 게을러지고 凶年에 凶暴해진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각박한 세상인데 凶年에 인심까지 凶해지면 곤란한데….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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