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환각` 일으키는 설치작품 …이기봉 개인전

  • 입력 2003년 9월 15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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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봉의 '수면기계'
이기봉의 '수면기계'
전시장 한 가운데 침대 매트리스가 놓여 있다. 수많은 붉은 수직선들이 사면 벽을 촘촘히 둘러싸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줄을 타고 붉은 물방울이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한 쪽 벽에 그려진 동그라미를 응시한다. 몇 초가 지났을까. 갑자기 붉은 수직선들이 빗방울처럼 보인다. 붉은 비속에 서 있는 것 같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나른해진다. 전체 공간이 하얗게 변하면서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이 든다.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이기봉씨(47·고려대 교수)의 개인전 ‘There Is No Place-The Connective(그 곳은 장소가 없다-접속사)’. 그의 설치작품 ‘수면기계’는 시각적 반응 뿐 아니라 이처럼 환각을 일으키는 신체적 반응까지 불러일으킨다.

이 전시회에는 제목 그대로 우리의 생각이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지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그가 선택한 재료는 ‘물’. 형태가 있는 듯 없는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물이라는 재료를 통해 갖가지 아이러니를 표현한다. 수족관 속에 두 개의 병이 부유하는 ‘I Couple 사랑과 애증의 대화’, 물 속에 책이 떠다니는 ‘독신자-이중적 신체’ 등. 무거운 물체들이 나비처럼 떠다니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무거움과 가벼움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강렬한 형광색 아크릴로 만든 책상 ‘잔인한 커플-이중적 의미’는 책상 바닥으로 액체가 흘러내린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지식 체계(책)도 저렇게 흘러 없어지는, 가변적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철학적 물음을 던진다. ‘꽉 참’과 ‘비어 있음’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다.

작가는 서울대 미대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1986년)과 토탈미술대전 미술상(1995년)을 수상했다. 02-735-8449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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