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로즈의 편지'…"톨스토이! 죽음이란 무엇인가요"

  • 입력 2003년 8월 29일 18시 55분


공쿠르상 수상작가 파스칼 로즈는 ‘로즈의 편지’에서 지난 세기의 문호 톨스토이에게 보내는 서간 형식으로 투병생활의 고통과, 위안을 털어놓는다. 일리아 레핀의 유화 ‘톨스토이’와 작가 파스칼 로즈(왼쪽 위).동아일보 자료사진
공쿠르상 수상작가 파스칼 로즈는 ‘로즈의 편지’에서 지난 세기의 문호 톨스토이에게 보내는 서간 형식으로 투병생활의 고통과, 위안을 털어놓는다. 일리아 레핀의 유화 ‘톨스토이’와 작가 파스칼 로즈(왼쪽 위).동아일보 자료사진
◇로즈의 편지/파스칼 로즈 지음 이재룡 옮김/111쪽 6500원 마음산책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은, 삶에 관한 일종의 정언명법(定言命法). 그러나 우리는 한사코 그 ‘기억’을 거부한다. 이미 내려진 판결의 집행을 무한정 지연시킬 수 있다는 듯이…. 그러나 죽음의 싸늘한 얼굴이 길 한복판에서 내 목덜미를 잡는다면, 다시 놓여난다 해도,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전과 같을 리는 없다.

저자인 파스칼 로즈는 첫 소설 ‘제로 전투기’로 1996년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았다. 그해는 그에게 정점이었지만 또한 나락이었다. ‘제로 전투기’의 최종 원고를 편집자에게 넘기기도 전 어느 봄날, 초인종 소리를 듣고 일어선 작가는 허물어진다. 동맥류(動脈瘤)의 기습을 받아 쓰러진 그는 한 달 동안 차가운 메스와 싸늘한 검사기기, 병실의 단조로운 흰 벽 속에 둘러싸인다.

그로부터 3년 뒤. 호화로운 시상식, 마음에 드는 새 집, 아름답게 피어나는 스무 살의 딸을 바라보며 죽음은 그의 머릿속에서 다소간이나마 멀어졌다. 그리고 어느 새벽.

“오랫동안 기다려 왔습니다. 당신은 수년 전부터 나를 굽어보고 있었으니 두렵지는 않습니다. …서재의 문을 열자 당신이 거기에 와 있었습니다, 리오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처절하게 분투한, 고독과 성찰의 시간. 그것을 그는 ‘어린 시절의 사랑’에 보내는 기록으로 써내려 간다. 상대는 톨스토이가 가족에게 불렸던 애칭인 ‘리오바’. 톨스토이는 분명 저자 로즈의 제안에 선뜻 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톨스토이가 증오한 종족인 여자’의 부름이었기에…. 그러나 저자에게는 톨스토이를 서재로 초대하는 특별한 전략이 있다. “책을 펼치면 당신의 내면이 보입니다. 당신은 내 사람이 됩니다. 당신의 장중한 몸을 그려 봅니다. 거칠고 늙은 몸, 쩝쩝 소리를 내며 귀리를 먹는 모습….”

초대를 받아 저자의 서재에 선 농군 차림의 늙은 사내가 할 역할이란 가만히 얘기를 듣는 것, 때로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최초의 실신, 파국의 순간, 작가의 기억은 서서히 그 이후를 더듬는다. 의사들에 의해 낯선 언어들로 해석되는 육체, 비로소 그는 자신의 몸이 타인들의 손에 점령되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코소보에서 전쟁소식이 날아들던 그 여름’에, ‘하잘 것 없는 내게 세상은 본질적으로 착했다’는 점에 환자는 감사할 수 있었다. 얼마간 몸을 추스른 뒤 모처럼 입에 댄 국수 세 입은 ‘비할 데 없는, 왕의 관능’이 된다.

죽음의 문 앞에서 돌아온 그의 회상 위에는 이윽고 죽어가는 ‘리오바’의 모습이 겹쳐진다. 톨스토이의 텍스트에서 읽혀지는 수많은 죽음의, 그리고 자살에의 유혹 또는 공포.

문호는 단언했다. ‘삶이란 신에게 다가가는 것, 사랑이 커져가는 것이라고 여전히 내가 믿고 있다면, 그럼에도 그렇게 말할 기운이 남아있지 않다면, 그때 나는 눈을 감을 것이다’라고. 그러나 그는 실제 최후에 이르러서는 온몸을 떨며 욕설을 퍼부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위선을 행한 것인가. 그럼에도 최후에 이어지는 것은 저자 로즈의 가장 찬란한 고백이자 헌사다.

“리오바, 당신이 나를 눈부시게 했다는 점을 잊지 마세요. 어떤 작가도, 아마 시인조차도, 당신처럼 내게 전율, 충만, 인간적 예외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이 당신의 선물입니다.”

작가는 이 책으로 2000년 프랑스어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작품에 수여하는 ‘모리스 주느부아 상’을 받았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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