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올무-덫 수거 앞장 백두대간보전회 김원기 회장

입력 2003-06-22 17:46수정 2009-09-29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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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잡힐 때까지 ‘죽음의 입’을 벌리고 있는 올무와 덫이 산에 남아 있는 한, 백두대간은 죽음의 능선에 불과합니다.”

94년 가을, 백두대간 강원 동해시 두타산의 7분 능선. 너구리 한 마리가 올무에 가슴이 걸려 발버둥치고 있었다. 며칠이나 몸부림을 쳤는지 거품을 물고 탈진한 모습이었다.

마침 산을 올라가던 백두대간보전회 김원기(金元起·49·상업·동해시 삼화동) 회장이 조심스레 다가가 올무를 풀어줬다. 허둥지둥 10여m를 달아나던 너구리는 갑자기 몸을 틀어 김씨를 바라보았다.

지난 8년 반 동안 백두대간에서 백두대간보전회 회원들과 함께 1만개의 올무와 덫들을 수거해낸 김원기씨.-동해=경인수기자

“너구리의 눈이 ‘살려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듯했어요. 그때부터 산에 오를 때마다 올무와 덫을 수거하기 시작했지요.”

그로부터 무려 8년 반 뒤인 22일, 김씨가 300여 회원들과 함께 수거한 이 ‘죽음의 장치들’은 1만개를 돌파했다. 전국의 회원들이 300여 차례에 걸쳐 인적이 뜸한 7∼8분 능선을 샅샅이 훑고 다닌 결과다.

“산에 생명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숨통이 있어야 하는데 올무와 덫은 생태계의 사슬을 끊고 숨통을 조이고 있습니다.”

동해 무릉계곡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1년에 40여일은 산으로 들어간다. 덫에 걸려 언제 죽었는지 모르게 썩어 있는 삵 너구리 산토끼 산양 등의 환영이 그를 산속으로 내몰기 때문. 영하 20도의 강추위 속에 밤을 지새우며 올무와 덫을 수거한 적도 적지 않다.

“가장 잔인한 것은 멧돼지 올무입니다. 올무 끝에 120cm가량의 통나무를 달아놓는데, 올무에 목이 걸린 멧돼지는 통나무를 매달고 나무 사이를 힘겹게 비집고 다니다 점차 목이 졸리고 물과 먹이를 먹지 못해 고통스럽게 죽어가지요.”

이들 ‘죽음의 장치’들을 제거하는 작업이 전국으로 번져간 계기는 98년. 그해 4월, 동해시 청옥산에서 백두대간보전회의 한 회원이 천연기념물 329호 가슴반달곰의 발자국을 발견하면서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들이 동참한 것.

그러나 이 일은 덜 화려하고 직접 몸으로 뛰어야 하는 힘든 환경운동이다. 회원 30여명이 산에 올라가 하루 종일 올무와 덫을 6개밖에 수거하지 못하고 돌아온 적도 있다. 주로 인적이 뜸한 곳을 다니기 때문에 부상할 경우에 대비해 늘 두 명 이상이 함께 다녀야 한다. 지뢰도 이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산에 버려진 쓰레기는 치우면 되지만 한번 죽은 동물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런 그의 정성이 통해서일까. 그는 “최근엔 전직 밀렵꾼 한 명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원이 되겠다고 해 그와 함께 올무와 덫을 찾으러 다닌다”고 자랑했다.

동해=경인수기자 sunghy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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