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커리우먼→ 프로 주부…신세대女 사표내고 살림-재테크

  • 입력 2003년 5월 29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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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그만두고 ‘프로주부’로 전향하는 신세대 여성이 늘고 있다. 모델은 주부 이태영씨.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직장을 그만두고 ‘프로주부’로 전향하는 신세대 여성이 늘고 있다. 모델은 주부 이태영씨.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서울의 유명 사립 여대를 졸업한 A씨(29)는 직장 생활 5년차이던 지난해 3월,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뒀다. 당시 연봉은 약 2100만원. 외국계 IT회사에 근무하는 남편(33)의 월급을 합쳐 한 달에 약 500만원의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는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과감히 전업주부의 길을 택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출산을 고려할 경우 맞벌이가 총수입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A씨처럼 결혼 적령기의 대졸 직장여성 가운데 커리어 우먼의 길을 포기하고 전업주부를 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386세대로 대표되는 ‘언니 세대’가 남녀평등과 자아실현을 위해 가정을 다소 희생하면서까지 커리어를 지키려고 애쓰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상명대 양세정 교수(소비자주거학과)는 “여성이 우리 사회의 주류 경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게 된 커리어우먼 1세대가 ‘386’이라면 현재의 결혼 적령기 여성들은 커리어 우먼 2세대”라고 정의하고 “1세대가 투사처럼 버텨온 삶의 현장을 2세대는 담담히 바라보면서 손익을 계산해 왔다”고 설명했다. 즉 이들 2세대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프로주부’의 손익 계산법

A씨는 직장 선배, 친언니 등을 통해 이들이 가정과 커리어를 모두 지키기 위해 겪은 시행착오를 잘 알고 있었다. 현재 맞벌이를 하는 이들은 “특히 출산 이후 이것저것 따져보니 맞벌이가 결국 ‘제로 섬 게임’(전체의 이익은 일정하므로 한쪽이 +가 되면 다른 쪽이 -가 되면서 결과적으로 이익의 합이 0이 된다는 뜻)에 가까운 것 같다”고 말해왔다.

A씨는 맞벌이를 고수하는 데 드는 기회비용을 하나하나 계산기로 두드려 봤다.

맞벌이를 할 때, 의식주 등 필수품 구입과 육아에 드는 추정 지출액 평균(한달 기준)은 362만원 이었다.(표 참조) 이를 남편과 자신의 예상 총소득 500만원에서 빼면 138만원이 남는다. 전업주부가 돼 육아와 가사를 직접 할 경우, 필수품 구입 및 육아비 추정 지출액은 170만원. 남편 수입 300만원에서 빼면 130만원이 남는다. A씨의 단순 계산에 따르면 맞벌이의 금전적 가치는 8만원뿐이었다.

지난해 전국 도시 거주 2만9963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맞벌이 가계와 비맞벌이 가계의 가사 노동 시장대체지출비 분석’을 한국가정관리학회지에 발표한 상명대 양 교수는 “맞벌이 가정 가운데서도 특히 주부가 전문직, 사무직에 종사할 경우 외식, 보육료, 보충교육비, 대리가사인(파출부) 급료 지출이 타 집단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고 밝혔다. 이들 집단은 비맞벌이 가정이 쓰는 보육료의 2배 이상, 외식의 50%가량을 더 지출하고 있었다.

육아는 맞벌이 여부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관건’이었다. 4년간 서울 강남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으나 15개월 전 아들 쌍둥이를 출산하면서 퇴직한 B씨(31)도 그랬다. 주변에서는 “교사면 다른 직업보다 훨씬 아이 키우기 좋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했지만 초등학교 2학년인 첫째 아들과 두 쌍둥이를 두고 일하기가 버거웠다. 쌍둥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경우 월 최소 50만원, 입주 베이비시터를 들일 경우 130만원이 든다. 첫째도 엄마가 퇴근하기 전까지 영어와 태권도 학원을 다니게 했을 것이다. 재직 당시 B씨의 월급은 약 170만원.

●‘슈퍼우먼 신드롬’은 환상이다

이들은 직장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애쓰는 ‘1세대’의 노력을 존중하지만 그 지향점인 ‘슈퍼 우먼’의 신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수 인력 손실’ 등 여성계의 지적에 십분 공감하지만 개인적 실익이 우선이다.

또 다른 ‘프로 주부’ 이은영씨(28)의 이야기.

“직장에 다니는 언니는 주중에 퇴근 전까지 아기를 돌봐주는 아주머니를 고용하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친정에 놀러 오죠. 결국 육아는 모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는 셈이에요. 그런데 사실 부모님도 조금 부담스러운 눈치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맡겨지는 아기도 제 눈에는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선배 하나는 아기 봐주는 아주머니에게 옷이며 음식을 바치며 얼마나 아부하는지…. 회사에서는 정말 당당하고 냉정한 사람인데도요. 이게 과연 커리어우먼이 원하는 ‘주도적인 삶’인지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남편의 울타리에 들어가고 싶어서…’ 내지는 ‘일이 힘들어서…’를 내세우며 ‘프로 주부’ 선언을 한 것이 아니다. 결정에 냉정한 잣대를 들이댄다. 잣대는 돈이다.

사실 결혼을 앞둔 또래 여성 가운데 대다수가 맞벌이를 선택한다. 사회적 성취감 등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회 노동의 가치가 포함되지만 기본적으로 맞벌이가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 선언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 전제’가 필요하다. 최근 ‘프로’로 전향한 신세대 주부들은 대개 △‘내 집’이 있을 것 △남편의 월수입이 300만원 이상일 것을 꼽는다.

A씨와 B씨 같은 여성들은 대개 본인의 소득을 기준으로 맞벌이를 택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여성개발연구원 노동통계연구부 김종숙 박사는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소득 기대치도 높다. 이들은 근로 소득이 맞벌이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보다 훨씬 높을 것을 기대하지만 육아비나 사교육비 수준이 높은 국내 사정상 그러기 쉽지 않다. 게다가 고학력 여성일수록 육아나 자녀 교육에 고급화를 추구함으로써 지출 규모가 더 커진다”고 말했다.

●재테크는 ‘프로 주부’의 필수 덕목

6월 초 결혼을 앞두고 국내 한 대기업에서 퇴사한 C씨(27)는 현재 어머니에게 신부수업으로 ‘재테크 과외’를 받고 있다. 어머니는 주택 청약, 재건축, 신도시 입성 등과 관련된 떠도는 입소문을 전해준다.

“현재 재산은 회계사인 신랑 연봉 6000만원과 시부모님이 마련해 준 30평대 서울 마포 아파트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부동산 투자, 세(稅)테크를 열심히 익힐 생각이에요. 신랑은 ‘80년대 복부인 같다’고 놀리면서도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 남는 장사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전업주부라도 사회활동을 보장받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집안에 눌러 앉은 50, 60대 ‘엄마 세대’와의 가장 큰 차이가 여기에 있다.

‘프로 주부’를 선언한 신세대 여성들의 재테크 마인드가 뚜렷한 점은 다른 또래 여성들 사이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동아일보 위크엔드팀이 결혼정보업체 ‘선우’ 리서치팀에 의뢰해 서울 및 전국 대도시에 거주하는 20대(25∼29세), 30대(30∼34세) 미혼 여성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혼 후 맞벌이 및 재테크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도 나타났다.

‘결혼 후 자기 계발을 위해 어떤 투자를 하겠느냐’고 물은 질문에 응답자 가운데 38.9%가 재테크를 꼽았다. △어학공부(22.7%) △학교 진학(20.7%) △취미 문화활동(12.5%)보다 훨씬 높은 수치.

설문 결과를 분석한 김지은 연구원은 “설문 대상자였던 70년대 출생 세대가 선호하는 재테크 방식은 보수적, 안정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1위는 부동산 투자(54.2%)로 △은행적금(43.8%) △증권투자(13.0%)를 압도했다. 부동산 투자 선호도는 △20대 58.2%(30대는 49.4%) △대졸 58.3%(고졸 응답자는 43.9%)에서 높게 나타났다. 주식투자를 통한 ‘대박’에 매달리던 일부 1세대 커리어우먼들의 실패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 설문 조사에서 ‘결혼 후에도 맞벌이를 하겠다’고 답한 132명에게 ‘배우자의 수입이 얼마면 맞벌이를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묻자 전체의 33.8%가 ‘배우자 수입에 관계없이 직장에 다니겠다’고 답했지만 절반에 가까운 46.9%는 ‘기대 수준 이상이면 맞벌이를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들의 기대 연봉 평균은 5412만원이었다.

여성학자, 가정학자들은 “고학력과 경력을 갖춘 신세대 여성들이 쉽게 가정에 정착하는 데는 이들 세대의 특성이 반영된다”고 말한다. 이들이 ‘한계와 모순이 많은 현실에 순응해버리는 조숙한 실리주의자’라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적 판단’이 장기적으로도 현명한 일인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엄마의 ‘시간’을 원하지만 커서는 엄마의 ‘돈’을 원한다”는 설명도 곁들여진다.

여성개발연구원 김종숙 박사는 “우리나라의 여성 취업 관행상 한번 취업 시장에서 퇴출되면 재진입이 어려우며 부동산 등 안정된 투자 소득원도 ‘엄마 세대’만큼 역동적이지 못하다”면서 “사회가 안정될수록 투자소득보다 근로소득에 대한 수익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영국여성들도 "전업주부가 좋아"▼

영국 여성 1100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에서 3분의 2가 가정에 남아 아이를 돌보고 남편이 일을 하는 전통적인 양육 형태가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간지 ‘데일리 메일’은 최근 영국 브리스톨대 사회학자들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대다수 젊은 여성들이 가정 내 엄마의 역할에 대해 놀랄 정도로 전통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립가족양육연구소의 길 킵 소장은 “젊은 엄마들이 이전 세대와 달리 육아와 커리어를 모두 잘 해 낼 수 있다고 믿지 않게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60년대에 태어난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 여성들은 자신들의 성장기에 활발했던 여권운동의 영향으로 맞벌이를 추구했지만 90년대 이후에는 전업주부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위대한 여성들: 선배들에게서 내가 배운 것’의 저자인 미국의 저널리스트 마리 브레너는 2001년 8월 뉴스위크지 기고문에서 “미국의 많은 20대 여성들이 70년대에 대학을 나왔으며 현재 직장에 다니는 자신들의 어머니 삶에 대해 양면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은 아이를 남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키우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우석대 이성희 교수(아동복지학)는 “미국의 맞벌이 가정에서도 여성이 육아, 가사를 전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린 선택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1960년대에 태어난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 여성들은 이들의 성장기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일어난 여권운동에 힘입어 맞벌이를 추구해 왔지만 90년대 이후 전업주부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우석대 이성희 교수(아동복지학)는 “젊은 미국 여성들 가운데서도 맞벌이를 포기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여성이 육아, 가사를 전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부 A씨의 맞벌이 vs 외벌이 한달 수지 비교표
주요 경비내용맞벌이 포기(월수입 300)맞벌이 (월수입 500)
식생활외식, 장보기 등5070
주생활관리비, 전기 수도 등 공과금 3030
의생활옷 구입 및 수선비 3060
대리 육아비베이비시터 급료0100
대리 가사비가사 용역 급료0(일주일에 2번) 32
남편 용돈5050
경조사비가족, 직장, 선후배1020
총액170362
수입-총액130138

비용은 현 시세에 따른 추정치. 주부 본인 용돈은 맞벌이에 관계없이 필수품 구입 후 남는 돈의 한도 내에서 탄력적으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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