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570>墨 守(묵수)

  • 입력 2003년 5월 15일 1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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墨 守(묵수)

墨-먹 묵 守-지킬 수 軒-추녀 헌

遵-좇을 준 缺-이지러질 결 偏-치우칠 편

墨은 옛날 필기도구가 발달하기 전 검은(黑) 흙(土)을 가지고 글씨를 썼던 데서 나온 글자다. 그리고 守는 면(면)과 寸(촌)의 결합인데 여기서 면이 지붕의 모습으로 ‘집’을 뜻한다 함은 이미 수차 밝힌 바 있다. 또한 면은 거창한 집, 곧 東軒(동헌)과 같은 官公署(관공서)를 뜻하기도 한다.

한편 寸은 ‘手’와 ‘주’(주)의 결합으로 손목 아래 한치 되는 곳이다. 따라서 寸은 손목이 있는 마디부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디 뜻은 ‘손목마디’가 되겠다. 그러나 옛날에는 길이를 잴 때 주로 손(뼘)을 사용했으므로 寸은 길이를 재는 도량형의 일종이기도 했다. 그래서 準則(준칙), 法度(법도)라는 뜻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守는 ‘관가에서 法度를 지킨다’가 되어 본뜻은 ‘지키다’가 된다. 곧 관리가 遵法精神(준법정신)을 발휘해 公平無私(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고 해서 墨守가 ‘먹을 가지고 지킨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墨은 사람의 姓(성), 곧 墨子(묵자)를 가리키는 말로서 ‘墨子가 지켰다’는 뜻이다.

戰國時代(전국시대) 때의 일이다. 楚(초)의 荊王(형왕)이 公輸般(공수반)이 만든 특수 사다리를 사용하여 宋(송)을 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 기계는 전문적으로 城(성)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였다. 墨子는 즉시 荊王을 만나 만류했다. 주지하듯이 그는 兼愛說(겸애설)을 주장한 사람으로 열렬한 反戰論者(반전론자)였다.

‘전쟁이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섰을 때에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비웃음만 사게 되지요. 제가 보기에 楚가 宋을 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荊王은 宋을 치지는 않았지만 墨子의 말은 믿지 않았다. 그러자 墨子가 말했다.

‘정 그러시다면 제가 城을 지킬테니 公輸般으로 하여금 치도록 해 보십시요.’

과연 公輸般이 아홉번이나 공략했지만 끝내 墨子가 지키는 城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이번에는 公輸般이 城을 지키도록 했는데 墨子는 아홉번이나 함락시켰다. 荊王은 그제서야 公輸般의 사다리가 缺點(결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리하여 墨子가 城을 지킨 고사는 일약 유명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墨子가 城을 굳게 지킨 것을 ‘墨守’라고 했는데 전통이나 我執(아집), 또는 偏見(편견)에 사로잡혀 조금도 태도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도 墨守라고 했다. 일종의 固守(고수), 死守(사수)인 셈이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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