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공화국]토론의 달인 만들기 연세대 ‘100분 토크쇼 강좌’

  • 입력 2003년 4월 17일 17시 16분


‘100분 토크쇼’ 수업에 참가한 연세대 학생들이 ‘동성애’를 주제로 찬반 논쟁을 벌이고 있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100분 토크쇼’ 수업에 참가한 연세대 학생들이 ‘동성애’를 주제로 찬반 논쟁을 벌이고 있다.
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11일 오후 연세대 백양관. 철학과 김형철 교수가 개설한 ‘100분 토크쇼’ 수업이 시작됐다. 김 교수가 사회를 맡고 수강 학생들이 찬반팀으로 나뉘어 처음부터 끝까지 토론만 하다 끝나는 게 이 수업의 특징. 이날 주제는 ‘동성애’였다. 몇 주전 미리 정한 주제였지만 마침 장궈룽의 자살 사건 직후여서 시의적절하기도 했다. 동성애 찬성 5명, 반대 4명.

●동성애를 어떻게 볼 것인가

찬성=소크라테스, 괴테, 나폴레옹, 한니발, 슈베르트, 도스토예프스키…. 역사적 위인 중 상당수는 동성애자였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건 동성애자는 존재한다. 동성애란 선천적인 성적 지향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이상하게 봐선 안된다.

반대=위인들이 동성애자라고 해서 동성애가 괜찮다는 주장은 말이 안된다. 지금 동성애는 청소년들을 많이 자극하고 있다. 성에 대한 비정상적 생각을 심어줄 가능성이 크다.

찬성=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고 했나. 만약 동성애 성향을 가진 청소년에게 그런 성향을 부인하도록 강요하면 더 큰 좌절을 겪지 않을까.

반대=동성애를 찬성한다는 것은 동성간 결혼도 인정한다는 것인가. 그로 인해 생기게 될 사회적 부작용은 어떻게 감당하나.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동성애를 터부시 해온 것은 사회 집단의 안정을 위해 오랜 세월 공감대를 형성해온 도덕의 결과물이다. 개인적 성적 취향을 위해 도덕을 부인해야 하나.

찬성=지금보다 도덕이 엄격했던 과거에도 동성애자는 있었다. 특히 이성이 발달했던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동성애는 인정됐다.

반대=그때 용납이 됐다고 해서 현재도 용납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찬성=동성애에 무슨 잘못이 있나. 동성애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무슨 악영향을 미치나.

교수=자, 흥분을 가라앉히자. 동성애자의 결혼이 허용됐다고 가정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상황을 놓고 한번 따져보자. 동성인 부부는 아이를 키우고 싶어 입양을 결정했다. 어렸을 땐 부모가 동성이라는 점에 문제점을 전혀 못 느끼던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친구들로부터 부모가 동성이라는 점 때문에 놀림을 당하게 되자 가치관에 큰 혼란을 겪는다. 이들의 입양 결정은 현명한 선택이었나.

찬성=극단적인 상상이다. 집에서 노력을 기울이면 가정의 상황도 이해하고 사회에도 적응하는 사람으로 키울 수 있다.

반대=아이의 정서가 황폐해질 수 밖에 없다.

찬성=아이가 고민하게 될 것 같지만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면 동성 부부의 자녀라고 해서 왕따 당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반대=소수인 동성애자들이 사회적 인식을 바꿀 수는 없다.

찬성=사회적 인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뀔 여지가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행동과 사상이 가장 자유롭다는 네덜란드도 중세에는 동성애자를 화형에 처했다.

●‘대통령과 검사들의 토론’의 경우

학생들은 토론 도중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고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 끊고 반박하는 경우도 잦았다. 김 교수는 “토론은 상대방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빨리 알아채는 게임이므로 흥분해서 상대방의 말을 놓친다든지 중간에 말을 끊는 것은 오히려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말했다.

수업이 끝난 뒤 김 교수는 토론의 방법론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그는 지난달 초 열렸던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김 교수는 몇 가지 점에서 그날 행사가 ‘토론회’와는 거리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우선 사회자 없이 토론 참석자인 노무현 대통령이 사회를 겸했다는 점을 들었다. 사회자는 토론 참석자들의 찬반 의견이 적절히 섞일 수 있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하므로 토론회에는 꼭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

좌석 배치도 적절치 않았다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대통령이 가운데 앉고 검사들이 양쪽으로 길게 늘어 앉는 것은 회의실의 모습이지 토론장의 좌석 배치로선 어색하다는 것.

김 교수는 이어 “양측의 토론 참가자 수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한편에 서고 검사측 10명이 반대편에 섰다. 이럴 경우 통상 인원이 많은 쪽이 ‘지게 된다’는 게 김 교수의 판단. 실시간으로 의견을 조율하는 게 상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통령과 일부 검사가 목소리를 높인 점에 대해 김 교수는 “토론에서 목소리를 자주 높이는 사람은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방을 압도했다고 여긴다”면서 “하지만 만약 상대방이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받아친다면 물리적인 압도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역사상 최고의 ‘토론의 달인’으로 소크라테스를 꼽았다.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설득시키려 하기보다는 끊임없는 문답을 통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무지(無知)’를 깨닫게 하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야말로 최고의 토론 기술이라고 그는 말했다.

금동근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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