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558>臥 薪 嘗 膽(와신상담)

  • 입력 2003년 4월 15일 17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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臥 薪 嘗 膽(와신상담)

臥-누울 와 薪-땔감 신 嘗-맛볼 상

膽-쓸개 담 恥-부끄러울 치 守-지킬 수

본디 人間事(인간사)란 뜻대로 되지 않는 수가 더 많다. 그래서 한두 번 실패하는 것쯤이야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처럼 흔히 있을 수 있다는 뜻에서 우리는 ‘兵家之常事’(병가지상사)라는 말을 한다. 문제는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再起(재기)의 여부다. 挫折(좌절)보다는 再起하여 마침내 큰 뜻을 이룬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기 위해서는 不屈(불굴)의 의지와 刻苦(각고)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처럼 목적을 이루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는 것을 臥薪嘗膽(와신상담)이라고 한다.

춘추시대 吳(오)와 越(월)은 怏宿之間(앙숙지간)이었다. 吳王(오왕) 闔閭(합려)가 먼저 越을 쳤지만 전사하고 만다. 임종 때에 태자 夫差(부차)에게 말했다.

‘반드시 내 원수를 갚도록 하여라.’

夫差는 복수의 칼을 갈았다. 호화로운 궁전에서 비단 이불을 덮기보다는 장작더미 위에서 누워 잤다(臥薪). 그러면서 반드시 복수하리라고 마음먹었다.

그 때 越王 勾踐(구천)이 선수를 쳤지만 오히려 대패하여 會稽山(회계산)에서 夫差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러자 勾踐은 夫差의 신하가 되기를 자청했다. 목숨이란 한번 죽으면 없어지는 것, 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는 잠시의 恥辱(치욕)쯤은 참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夫差는 勝者(승자)의 아량을 발휘하여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그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이번에는 勾踐이 복수의 칼을 갈았다. 그는 방의 서까래에다 쓰디쓴 돼지 쓸개를 매달아 놓고 자나깨나 핥았다(嘗膽). 그러면서 말했다.

‘내 결코 會稽山의 치욕을 잊지 않으리라!’

이렇게 하기를 십여 년, 국력이 절정에 달해 있던 夫差는 옛날을 잊은 채 勾踐에 대한 방비를 게을리 하고 말았다. 이 때를 틈 타 勾踐이 다시 군사를 일으켜 吳나라를 대패시키고 夫差를 사로잡았다. 상황이 역전된 셈이다.

勾踐은 옛날 夫差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그를 살려두되 멀리 귀양을 보낼 생각이었지만 夫差는 勾踐의 호의를 거절하고 깨끗이 자결을 선택했다. 이리하여 최후의 승리는 越나라의 勾踐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吳王 夫差나 越王 勾踐이 각고의 노력 끝에 목적을 이룰 수 있었던 점은 같다. 그러나 夫差는 守成(수성)에 실패한 반면 勾踐은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다. 목적을 달성하는 것 못지 않게 그것을 잘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함을 일깨워 준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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