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557>聖 域(성역)

  • 입력 2003년 4월 13일 17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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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 域(성역)

聖-성인 성 域-범위 역 疇-밭두둑 주

奪-빼앗을 탈 闕-대궐 궐 敬-공경할 경

말은 時代(시대)를 담는 그릇, 그래서 時代가 달라지면 말도 달라진다. 말은 또한 살아있는 有機體(유기체)와도 같아 生老病死(생노병사)의 과정을 거친다. 그런 만큼 말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變化(변화)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 본뜻과는 달리 사용되는 경우도 있고 突然變異(돌연변이)되어 전혀 다르게 바뀐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런 예의 하나에 ‘聖域’이 있다. 본디 뜻은 ‘聖人의 境地(경지)’나 ‘地位’(지위), 또는 ‘聖人의 範疇(범주)’로서 ‘사람’을 대상으로 한 抽象的(추상적)인 개념일 뿐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聖域에 들 수 있는 사람은 堯舜(요순) 임금이나 孔子(공자)같은 인물 정도에 불과했다니 대단한 境地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孟子(맹자)도 정식 聖人이 아닌, ‘聖人에 버금간다’는 뜻에서 ‘亞聖’(아성)으로 불렸을 정도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聖域이 ‘神聖(신성)한 地域’으로 바뀌면서 본래의 뜻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군주시대의 관념이 자리잡고 있다.

옛날의 임금은 生死與奪(생사여탈)의 절대권력을 한 손에 움켜쥐었던 존재였다. 이 때부터 임금은 神聖不可侵(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인식되게 되었으며 ‘聖’은 곧 ‘임금’을 상징하게 되어(聖敎, 聖德, 聖顔, 聖恩, 聖節, 聖旨, 聖寵, 聖訓 등) 聖域이라면 임금과 관계되는 ‘神聖不可侵의 地域’을 뜻하는 말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宮闕(궁궐)이나 宗廟(종묘), 王陵(왕릉), 出生地(출생지) 등이 해당되었는데 물론 함부로 출입하는 것을 막았다. 이런 곳에는 대체로 下馬碑(하마비)를 세워 聖域임을 표시하고는 누구나 말에서 내려 敬意(경의)를 표하도록 했다. 후에는 聖域의 범위도 넓어져 聖人은 물론 高官(고관)이나 장군들의 출생지나 무덤 따위도 ‘聖域’으로 지정하여 下馬碑를 세워두곤 했다. 특히 지금은 종교적인 의미에서도 자주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민주화가 된 지금, 聖域의 範疇도 많이 바뀌었다. 과거 聖域이었던 王宮은 지금 名勝古蹟(명승고적)으로 지정되어 張三李四(장삼이사)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다만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殉國先烈(순국선열)의 墓域(묘역)이나 기타 특정 祠堂(사당)만이 聖域의 지위를 누리고 있을 뿐이다. 한 때나마 聖域視 되었던 靑南臺(청남대)가 민간에게 개방된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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