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세계를 움직인 그림들'…그림속에 숨은 일화

  • 입력 2003년 3월 28일 17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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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움직인 그림들/클라우스 라이폴트, 베른하르트 그라프 지음/임미오 옮김 2만8000원 중앙M&B

역사를 보여주거나 역사를 만들었던 그림 90여점을 담았다. 그림에 맞물려 작품이 생성됐던 시기의 사회적 상황과 화가의 삶, 그림에 숨어있는 일화와 이야기도 실었다.

예를 들어 ‘돈이 세상을 지배하다’라는 소제목 아래 플랑드르의 화가 쿠엔틴 마시스의 ‘환전상과 그의 아내’를 보여주고 ‘상거래’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들려준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상거래’는 기원전 4세기 고대 이집트에서 물물교환의 형식으로 시작된다. 그 뒤 페르시아인들이 화폐 주조를 생각해내면서 화폐 경제가 본격화된다. 주화의 황금기는 수입 무역이 유행하던 중세 후기부터. 상거래가 국제화되면서 환전상이 등장했다. 이들은 저울과 현미경을 이용해 무게와 귀금속의 함량에 따라 주화의 가치를 결정했다. 그림을 통해 대형 상거래 중심지에서 환전상을 빼놓을 수 없었다는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

‘태양왕’ 루이 14세의 위풍당당한 초상화 옆에는 그의 이가 몽땅 빠지게 된 까닭을 소개했다. 치아가 위험한 질병을 유발한다고 믿었던 의사들이 루이 14세의 이를 뽑는 수술을 했는데 그만 부작용이 생겼다. 결국 그의 입천장에 구멍까지 생겼고 나머지 이도 죄다 뽑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막강한 권력자였던 루이 14세가 아주 예의 바르고 상냥하며 누구에게도 굴욕감을 주지 않았다는 기술도 흥미롭다.

저자들은 또 얀 반 에이크의 ‘아로놀피니의 결혼식’ 그림을 매개로 중세의 결혼풍경을 들여다본다. 중세에선 이혼한 사람들이 독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아웃사이더였다. 플랑드르지방에서는 서른이 되도록 결혼하지 않은 남자에게 결혼하라는 최후의 날짜를 통보했다. 그래도 결혼을 하지 않을 경우 이른바 ‘굴욕의 책’에 이름이 올라가는 치욕을 당했다.

화가에 얽힌 이야기로는 천부적 재능을 가졌지만 살인죄로 로마에서 추방돼 37세 나이에 돌보는 이 없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카라바조, 화가로서 분명한 자의식이 담긴 최초의 예술가 자화상을 그린 알브레히트 뒤러, 스물한 살이나 연상인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했다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프리다 칼로 등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저자들은 이 책이 ‘미술사가 아니라 문화사’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따져서 어느 쪽에도 충실하다고 보기 힘들다. 대신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그림 90점이 담긴 멋진 화집이라고 생각하면 아쉬움이 덜할듯.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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