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당신들의 천국' 작가 이청준-실제모델 조창원씨 대담

  • 입력 2003년 3월 3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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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을 쓴 소설가 이청준씨(왼쪽)와 소설의 모델 조창원 원장이 오랜만에 서울에서 만남을 가졌다. -이종승기자
‘당신들의 천국’을 쓴 소설가 이청준씨(왼쪽)와 소설의 모델 조창원 원장이 오랜만에 서울에서 만남을 가졌다. -이종승기자
《이청준(李淸俊·64)씨의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문학과지성사)이 최근 100쇄를 넘어섰다. 1976년 첫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30여만부가 판매된 ‘당신들의…’는 나환자촌인 소록도에 부임한 현역 대령 조백헌 병원장의 고뇌와 갈등이 큰 축을 이룬다.조백헌 원장의 실제 모델은 60, 70년대 소록도병원장으로 일했던 현 영남의료재단 복지의료센터 조창원(趙昌源·77) 원장. 소설에서 원장은 순수한 의지와 선의로 환자들의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득량만 매립 공사를 추진하지만 환자들의 불신과 외부의 도전, 내면의 번뇌와 뼈저린 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것은 실제 오마도(五馬島) 간척사업에 뛰어 들었던 조창원 원장의 고민이기도 했다.》

소설의 100쇄를 맞아 소설가와 작품의 모델이 최근 서울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조창원=이렇게 단둘이 ‘당신들의 천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지요? 이 선생에게 늘 감사했는데 그 마음을 이제껏 표현한 적이 없네요.

이청준=제 소설 때문에 피해 본 것부터 말씀하셔야지요. (웃음)

조 원장은 ‘당신들의 천국’으로 인해 간척사업 등 소록도 문제가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게되면서 병원에서 쫓겨나 강원 정선에서 규폐증 환자들을 돌보게 된다. 이후 대전을 거쳐 현재 밀양에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조=오랜만에 이 선생을 만나니 1961년 9월초 소록도병원장으로 처음 부임해 가던 길이 생각나네요. 그 때 환자와 같은 배를 타지 않으려는 직원들에게서 ‘거만’을 봤습니다. 아, 소록도는 ‘죽은 섬’이구나…하는 생각이 번쩍 들더군요.

이=아예 배가 따로 있었잖아요. 환자들은 노 젓는 배를 써야 했지요.

조=그랬지요. 이들에게 인권과 자유를 찾아주면 새 삶을 시작할 줄 알았는데 집과 사회, 국가에서 버린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마도 간척사업을 구상한 것이지요.

이=원장님이 주도하신 간척사업은 환자들에게 고향을, ‘새 땅’을 만들어주자는 뜻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육지인들과 마찰을 빚고, 정치적인 문제가 얽히면서 나중에 사단이 생기고 말았지요.

조=소록도를 ‘죽음의 섬’으로 보지 않은 사람이 바로 이 선생이었어요. 진실하게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릴 수 있다면 10만 나환자를 살리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1974년 제가 소록도를 찾았을 때, 원장님께서 저를 무섭게 시험하셨지요? 원장님께서 소설을 쓰려면 환자들과 한두 달은 같이 지내야 된다고 하셨는데, 결국 깎고 깎아서 이틀만에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하루종일 원장님과 정종을 몇 병이나 마셨던지요.

조=처음 봤을 때 이 선생 인상이 참 차분했어요. 내 이야기를 잘 경청해줬지요. 이 선생이 그랬지요. ‘소설이니 사실과 허실이 있을 거다. 그러나 그 차이는 독자가 받아들여야 할 몫이다’. 소설은 100년, 1000년 갈지 모르니 사실 겁이 나더라고요.

이=원장님께서 당시 정치적으로 몰려 있던 상황이어서 ‘소설에서 안 좋게 그려지면 불이익이 돌아올 수도 있겠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보름 후에 구속이 되셨어요. ‘신동아’에 소설을 연재하는 중에 사모님과 따님의 전화도 받았습니다. 재판 등 현실적인 문제가 소설과 걸려 있어서 참 어렵게 썼던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소설 속 모델을 만나기가 두려웠습니다. 그 삶에 긍정적인 작용을 했으면 모르지만, 피해를 드렸다는 생각에….

조=허허. 나는 소설 덕분에 소록도와 인연이 끊어지지 않고 두터운 매듭을 이어 왔어요.

이=모델이 있는 소설은 완성되면 그것으로 끝이지요. 그러나 소록도와 원장님이 아직 살아 있고, 계속해서 일을 하고 계시잖아요. 원장님께서 소설의 2부를 삶으로 쓰고 계신 겁니다. 2부가 1부에 활력을 주는 것이지요. 소설 출간 이후 27년이 지났지만 독자들이 꾸준히 찾아 주는 것은 원장님 때문입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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