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막을 누비던 톱스타가 대중 앞에 나서는 게 부담스럽다니 의아했다.
“남 앞에 나서면 자꾸 자신을 포장하게 돼요. 나와 다른 나를 보여줘야 할 때가 많죠. 성격상 뒤에서 속을 끓이며 사는 것보다 내 식대로 살고 싶었죠. 연예활동 할 때도 그랬어요. 특히 연예계에선 있는 그대로를 보이면 기사가 안 되잖아요.”
생명창고는 소형 가전제품, 옷, 가구, 액세서리 등 쓰지 않는 물건을 기증 받아 판매한 수익금으로 제3세계의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을 한다.
생명창고가 자원봉사자 위주로 운영되는 만큼 자신은 홍보와 기증부탁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고씨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이다. 서울 평창동 예능교회를 다니는 그녀와 언니 4명 모두가 권사이고 막내 남동생은 설교 잘하기로 유명한 이재철 목사다.
고씨는 나이 차이가 나는 남편에게 ‘교회를 나가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에야 결혼에 응했다. 처음엔 억지로 끌려 다니던 남편은 이제 어엿한 장로가 됐다. 남편은 영화 흥행업계의 대부 곽정환씨.
고씨 부부와 아들딸 부부, 손자 등 10명은 매주 일요일 교회에서 예배를 본 뒤 같이 점심을 먹는다.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묻자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18절을 척 펼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그의 전도 이력도 만만치 않다. 방송계와 영화계에서 그의 전도로 하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많다.
“씨는 많이 뿌렸죠. 싹을 틔운 사람도 좀 되는 것 같고. 한번은 후배 하나가 ‘저도 이젠 교회 나가요. 옛날에 선배님이 교회 다니라고 그렇게 강조하시는 게 너무 듣기 싫었는데 이젠 이해가 돼요’라고 말하더라고요. 근데 나이가 드니까 열심히 전도하기도 힘들어요.”
현재 KBS 일일드라마 ‘노란 손수건’을 집필 중인 작가 박정란씨나 가수 장욱조씨(목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 전도자였다고.
눈가에 팬 주름과 염색으로 가린 흰머리가 50대 중반임을 알려주지만 이름 그대로 고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나이가 부담스럽지 않는지를 묻자 ‘전혀’라고 빠르게 대답한다.
“연예계에 있을 당시에도 나이를 속여본 적이 없어요. 나이 먹는 건 자연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조금씩 여유가 생기고 버둥대지 않게 되고. 연륜이 그런 것 같아요. 너무 좋아해도 좋은 일만 생기는 것도 아니고 속상해도 내일은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요즘 좋아하는 국내 여배우가 있느냐는 질문엔 “모두 잘하긴 하는데…” 하고 말끝을 흐린다. 몇 번 추궁을 받은 끝에야 “제가 좋아하는 이미지는 그레이스 켈리 같은 ‘우아함’인데 요즘 그런 사람은 인기가 없나 봐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말끝에 그의 얼굴에서 그레이스 켈리의 고아(高雅)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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