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南갈등' 풀기…계간 '당대비평' 대안 제시 눈길

  • 입력 2003년 2월 20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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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남남(南南)갈등’은 과연 해소될 수 있을까? 계간 당대비평은 최근 발간된 봄호에서 특집 ‘이분법적 질서를 넘어’를 통해 친미론자와 반미론자, 체제수호적 통일론자와 반체제적 통일론자, 그 밖의 ‘우리’와 ‘저들’로 나뉜 ‘남남갈등’의 당사자들이 생산적 토론에 들어가기 위한 중립지대를 제시해 관심을 끌었다.》



▼친미 vs 반미 ‘反美〓친북, 親美〓굴종' 경계를 ▼



▽친미와 반미=권용립 경성대 교수(정치학)는 작년 말 촛불시위를 ‘안티 아메리카니즘’이라는 단일 코드로 몰아가는 데 반대했다.

권 교수는 “촛불시위는 민족의 자존을 회복하려는 움직임과 관련된 것이지 미국 자체를 증오하고 반대하는 반미 이데올로기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며 “그걸 단순히 ‘안티 아메리카니즘’이라고 부른다면 미국의 실패한 중동정책이 빚은 아랍권의 반미와, 미국의 성공한 냉전정책이 역설적으로 빚어낸 한국의 반미 모두를 ‘피고 미국’의 견지에서 하나로 묶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에 친미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것은 친미라는 이름으로 인지될 수조차 없는 ‘공기와 같은 정서’ 즉, 미국을 너무 가깝게 느꼈기 때문에 오히려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볼 수 없었던 상황인 맹미(盲美)를 표상한 말”이라고 지적하면서 “모두가 미국에 대해서 아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아무도 미국을 몰랐던 맹미를 반성하고 미국의 본성을 관찰하는 관미(觀美)의 단초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권 교수는 “반미를 곧바로 친북으로 해석하고 우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친미를 무조건 미국에 대한 굴종으로 매도하는 것은 사실의 일면만 보는 것”이라며 “자존에 대한 요구로서의 반미도 과거의 친미처럼 맹목적 관성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일론 ‘통일은 필요한가’ 생각할 때 ▼

▽체제수호적 통일론과 반체제적 통일론=이우영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남남갈등의 핵심은 극단적으로 말해 북과 공존할 수 있느냐 없느냐 즉, 북과 공존할 수 없다면 어떤 지원도 할 필요가 없고 북과 공존할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든 지원을 계속해야 하는 것의 차이”라고 정리한 뒤 “화합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들 통일론은 둘 다 역으로 절대적인 가치를 통일에 두고 있고 자신의 주장만을 옳은 것으로 여긴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문제제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체제수호적 통일론과 반체제적 통일론은 그동안 자신의 통일담론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를 주장하기보다는 상대편이 얼마나 반통일적인가를 증명하는 데 열심을 냈다는 것. 지배집단은 자신들의 통일론과 다른 주장을 체제를 위협하는 적으로 간주했고 반체제 집단은 지배집단의 통일론을 체제를 위협하는 적으로 간주했다. 그 과정에서 체제유지를 위해(체제수호적 통일론), 혹은 체제변화를 위해(반체제적 통일론) 통일을 얘기했지 정작 통일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에 대한 얘기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연구위원은 “통일이 정말로 필요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통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모르는 대다수 사람들로부터 통일을 추진하기 위한 동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정말로 통일이 필요한가’라는 근본 문제부터 차근차근 얘기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주장했다.

▼우리 VS 저들 ‘동지 아니면 적’ 이분법 곤란 ▼

▽우리와 저들=윤평중 한신대 교수(철학)는 칼 슈미트의 ‘적과 동지의 이분법’을 거론한 뒤 서로 혐오하는 전투적 극우와 낭만적 극좌가 실은 슈미트의 후예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최근 대북지원금을 둘러싼 논란에서 한쪽은 햇볕정책 외에는 까다로운 북을 다룰 다른 대안이 없다고 역설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지원금이 보내진 불투명한 과정 및 그 의도와 효과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며 “그러나 이 두 해석이 서로 충돌한다고 미리 선언하기보다는 앞으로의 사태 진전에 의해 그 설명력을 검증 받게 될 상호보완적 경합 가설로 간주하고 즉, 스스로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말싸움'에 들어가야 한다”고 제의했다. 윤 교수는 “상대방을 수구 냉전 세력이나 민족 반역자라고 미리 ‘딱지’를 붙이거나 차분한 토론 대신 욕설과 매도를 퍼붓는 행위는 우리가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하는 슈미트적 정치의 질곡으로 다시 퇴행해 들어가는 것”이라며 “서로에 대한 비판이 우리와 저들의 이분법으로 고착돼, 우리가 하는 언행은 정당하며 저들의 발언은 그르다는 기계적 분류법으로 이행될 때 한국 사회는 새로운 몽매주의로 퇴화할 위기를 맞게 된다”고 지적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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