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테마여행]삿포르의눈·라멘·맥주

  • 입력 2003년 2월 6일 1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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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비어가든을 모방해 지었다는 삿포로 비어가든에서는 삿포로 맥주 뿐만이 아니라 아사히, 기린 등 일본의 대표적인 맥주들을 마음껏 마실 수 있다.삿포로=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독일의 비어가든을 모방해 지었다는 삿포로 비어가든에서는 삿포로 맥주 뿐만이 아니라 아사히, 기린 등 일본의 대표적인 맥주들을 마음껏 마실 수 있다.삿포로=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일본 열도의 최북단 홋카이도는 겨울이 몹시 길고 춥다.

섬의 중부와 동부 지역을 뒤덮은 눈이 녹는 시기는 4월부터. 1월 중순부터 2월까지 홋카이도의 근해인 오호츠크해에는 얼음덩어리들이 떠다닌다.

혹독한 자연환경을 가진 그들이 찾아낸 놀거리가 지천에 쌓인 ‘눈’이었던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때마침 제54회 눈축제가 5일 시작돼 11일까지 계속된다.

홋카이도 중남부 지역에 있는 삿포로는 눈축제가 지금처럼 유명세를 타기 이전에는 평범한 개척도시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테마’로 이곳을 찾는 이방인들에게서 막대한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눈 이외에 이 도시가 내놓는 또 다른 매력적인 테마는 바로 라멘과 맥주이다.

● 돼지뼈로 국물을 우려내는 삿포로 라멘

삿포로 정통 라멘. 가게는 작은데 맛 보겠다는 사람들은 많아 대개 서서 먹는 스타일이다. 사진제공 월드

‘눈으로 맛보는 일본 요리’의 특징은 어떤 것일까? 그 첫 번째는 쇼쿠도(식당)와 이자카야(주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일본 요리점들이 한가지 요리만을 전문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런 전문 요리점들이 몇 대에 걸쳐 전수된 요리 비법과 고유의 맛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손님들이 직접 만들어먹는 스타일이 인기라는 점이다.

일본사람들 사이에 가장 보편적인 요리로 꼽히는 아이템은 단연 라멘이다. 삿포로 라멘은 그 중에서도 최고로 꼽힌다. 후쿠오카의 하카다 라멘, 오사카의 금룡 라멘, 기타가타 라멘과 더불어 일본의 라멘을 대표하는 삿포로 라멘은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깊고 그윽한 맛이 입 안 가득 감긴다. 돼지뼈다귀를 푹 곤 누런 국물에 담겨 나오는 면발과 그 위에 얹혀 있는 훗카이도산 해산물, 옥수수가 삿포로 라멘의 특징.

삿포로 라멘을 제대로 즐기려면 지하철 스스키노역 동쪽에 있는 신,구 두 곳의 라멘요코초(라면골목)라는 좁은 골목길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 수십 채의 라멘가게가 나란히 들어서 있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물론 외국 관광객도 찾아오는 명소여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골목길은 늘 혼잡하다.

미소(일본 된장)국물에다 야채를 사용하는 정통 삿포로 라멘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만주에서 온 귀환자에 의해 고안된 것이라고 한다. 당시 개업한 이래 자손들이 물려받아 영업하는 곳이 많기 때문에 가게들마다 역사가 깊다.

소문난 라멘가게는 발디딜 틈없이 북적거린다. 20여m쯤 줄서기는 보통이고 점심이나 저녁식사 시간에는 1시간 기다리는 것도 예사다.

라멘의 생명은 국물 맛. 우리나라 라면 국물은 맵고 시원한 것이 특징인 데 반해 이곳 라멘의 국물은 한국인의 입맛에는 약간 느끼하다. 대체로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것은 일본식 된장국물로 만든 ‘미소라멘’과 간장과 고기, 여러 야채를 끓인 국물로 만든 ‘쇼유라멘’ 정도이다. 격전을 벌이듯 길게 늘어선 라멘집들은 저마다 고유한 맛을 강조한다. 홋카이도의 길고 매서운 겨울날씨를 이겨내는데 ‘아이누 라멘’이라는 별칭을 갖는 삿포로 라멘만큼 확실한 영양식도 없다.

일본의 여행전문출판사 산케이가 부정기적으로 발간하는 라멘 전문지는 해마다 전국의 소문난 라멘집들에 관한 평가 기사를 게재한다. 치열한 경쟁 끝에 베스트에 드는 라멘집들 대부분이 삿포로 라멘집들이다. 조리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을 정도의 차이이긴 하지만 엄격히 따져볼 때, 같은 재료를 썼다 해도 ‘똑같은 맛이 있을 수 없다’는 삿포로 라멘. 거기에 입에 착 감기는 고소한 맛의 삿포로 맥주까지 곁들인다면 건조하고 긴 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이곳 사람들에게 최고의 밥상이 아닐 수 없다.

● 삿포로의 또 다른 매력

삿포로의 명물 눈축제박물관.사진제공 캠프

삿포로란 지명은 홋카이도의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말로 ‘오랫동안 메마른 강바닥’이란 뜻이다. 아이누족은 8∼14세기 이곳에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일본인보다는 코카서스 인종과 비슷한 외모를 지닌 아이누족은 자연과의 유대의식이 강해 의식주 생활 전체를 전적으로 자연에 의존하는 게 특징이다.

삿포로는 오래 전부터 아이누족이 살던 땅을 몰수해 만들어진 새로운 도시이다. 메이지유신 무렵인 1860년대 아이누족에 대한 강력한 동화정책이 진행됐고 그들이 살던 지역은 ‘개척’됐다.

삿포로 동쪽으로 14㎞ 떨어진 곳에 있는 ‘홋카이도 역사마을’에는 19세기 후반 건물 60여채의 복제품이 야외에 전시돼 있어 당시의 생활상과 개척사를 한가닥 짐작케 해 준다. 지금의 삿포로는 홋카이도의 도도(道都)답게 일본에서 다섯번째로 큰 대도시가 됐다. 동계올림픽(1972)과 두 차례 아시아 동계올림픽(1986, 1990)을 치러낸 스포츠 천국으로도 유명하다.

삿포로 시내에는 지하철 4개 노선과 전차가 다니고 도시 구조가 바둑판 모양이라 관광하기도 수월하다. 특별히 가볼 만한 곳으로는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라는 말을 남긴 클라크 박사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는 홋카이도 대학, 삿포로시의 상징으로 종종 가이드북이나 엽서를 장식하는 시계탑, 오오도리 공원(大通公園) 등을 추천할 만하다. 오오도리 공원은 삿포로의 중심을 동서로 잇는 약 1.2㎞의 녹음이 넘쳐흐르는 곳으로 여름엔 맥주가든, 겨울엔 눈축제가 열리는 명소다. 눈축제 기간 동안 공원에는 200여개의 거대한 눈조각이 전시된다. 이 눈조각을 만들기 위해 삿포로 시민들은 겨울 동안 평균 2m 가까이 내리는 눈을 버리지 않고 모아둔다.

삿포로에서 찾아가야 하는 먹을거리 명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맥주를 테마로 한 장소들이다. 홋카이도를 개척하던 당시부터 만들어진 삿포로 맥주는 깨끗한 수질과 오랫동안 축적된 노하우 덕분에 비리지 않고 개운한 맛이 강하다. 1878년 일본 최초의 맥주공장이 삿포로에 만들어진 것도 건조하고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홉과 풍부한 물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아사히, 기린맥주도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다. 홋카이도에서 맥주를 마실 때는 홋카이도로 판매구역을 제한해 공급하는 ‘삿포로맥주 구로라베르’가 가장 좋다.

히가시쿠에 있는 삿포로 맥주 박물관을 찾아가면 부속건물인 ‘비어가든’에서 여러 가지 맥주의 맛을 마음껏 음미할 수 있다. 북유럽 스타일의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옛 맥주 공장건물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는 비어가든에서는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신선도, 온도, 따르는 법 등 3가지를 철저히 지킨 맥주의 맛을 음미하는 것은 물론이고 3400엔만 내면 맥주와 각종 음료, 그리고 이곳만의 자랑인 쇠고기와 양고기, 각종 해산물 구이를 자기양 만큼 제한없이 먹을 수 있다.

이곳에서 마실 수 있는 맥주는 부근의 맥주공장에서 생산된 갓 발효된 것이다. 공장의 저장고와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 즉석에서 받아 마실 수 있다. 100분이라는 제한시간이 있긴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어떤 제한과 간섭없이 삿포로 기린 아사히 등의 맥주와 홋카이도의 전통구이요리를 맛볼 수 있다. 한꺼번에 약 3500명의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맥주홀의 풍경은 세계적인 맥주축제인 독일의 옥토버 페스트 현장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인들의 완벽한 모방기술에 감탄할 따름이다.

또 삿포로 맥주박물관에서는 맥주 제조의 역사와 제조 공정을 견학할 수 있다. 예전 맥주 공장을 현대적인 분위기에 맞게 개조해놓은 ‘팩토리’라는 이름의 거대한 쇼핑타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이다. 5층 규모의 유리돔 건물로 젊은이들을 위한 각종 쇼핑 아이템들과 공예품, 기념품, 액세서리 등을 취급하는 다양한 상점들이 입점해 있다.

여행칼럼니스트 nolja@worldpr.co.kr

● 여행정보

1. 찾아가는 길

우리나라에서 삿포로까지는 대한항공(02-2656-2000 /월, 수, 목, 금, 일)이 직항편을 운항한다. 이동 시간은 약 2시간35분 정도. 모두 신치토세 공항에서 내려 삿포로로

이동하는데, JR 쾌속(약 36분 소요. 15분

간격 출발), 공항연결버스(약 1시간20분

소요, 20분 간격 출발)가 마련되어 있다.

2. 기타 정보

삿포로의 명물인 라멘을 100% 즐기기

위해서는 맛과 개성을 가진 정통 라멘집을

골라본다. 어패류를 우려낸 국물맛이 인기인 이로리(81-11-261-9589), 미소라멘

전문점인 게야키(81-11-552-4601)와

아지노산페이(81-11-231-0377), 전 일본 라멘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는 만류 라멘 요코초 지점(011-518-2427) 등을꼽을 수 있다.

라멘 외에 일반 여행정보는 국내에 있는

홋카이도 관광청(02-771-6191),

일본 국제 관광진흥회(02-732-7525 /www.jnto.go.jp), 삿포로 사이트(www.global.city.sapporo.jp 혹은 www.welcome.city.sapporo.jp/tourism/k)에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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