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아기돼지 세마리'

  • 입력 2003년 1월 14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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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돼지 세마리

데이비드 와이즈너 글 그림/이옥용 옮김/38쪽/9400원/마루벌(6세~초등 저학년)

최근에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옛이야기들을 다시 쓴 책들이 심심찮게 나오는데, 이런 책들은 대부분 주인공의 성별을 바꾸거나, 악당을 착한 인물로 바꾸는 따위의 줄거리를 비틀어보는 것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기본 줄거리의 틀은 그대로 두되, 작가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보여주는 이야기와 그림의 형식이 아주 새롭다.

작가는 그림책의 이야기 속 공간인 네모난 틀 안의 돼지와 그 틀 바깥 세상, 그러니까 이야기 바깥 세상이라는 또 하나의 공간을 선보이면서 만화에서 주로 써 왔던 말주머니를 넣어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보여준다. 그림책에서의 여백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온전히 앞뒤 한 장을 점 하나 없이 하얀 백지로 놓아둔 작가의 용기에 놀랄 만하다. 그것은 늑대가 없는 안전한 세상, 넓고 자유로운 세상을 표현한 듯하면서도 끝없는 호기심으로 충만한 아이들의 모습과도 닮았다.

책을 보는 독자들은 돼지를 꿀꺽 먹어버렸는데도 여전히 배가 홀쭉한 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늑대와, 네모난 틀 밖으로 나온 돼지의 모습에서 그림으로 전달하는 언어가 얼마나 풍부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 밖으로 나온 돼지는 틀 안의 돼지와는 다르게 생동감 있는 모습이다. 돼지들의 몸짓, 얼굴 표정, 털 하나하나까지 살아있음을 온 몸으로 기뻐하는 듯하다.

줄거리만으로는 세 마리의 아기 돼지들이 늑대의 위험을 피해 이야기 밖으로 나왔다가 세상을 구경한 뒤, 위험에 빠진 용을 구출하기 위해 다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결국에는 셋째 돼지가 지은 튼튼한 벽돌집으로 다시 들어가서 행복하게 잘 산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림으로 읽을 수 있는 언어들은 글자로 표현된 이야기 이상이다.

‘옛날옛날에 아기돼지 세 마리가 살고 있었어요.’ 이 첫 문장만 보아도 아이들은 부지런한 사람만이 무서운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뭔가 가르치고 싶은 어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아이들은 셋째 돼지의 부지런함보다 늑대의 센 입김과 희화화된 동물들의 모습을 더 오래 기억한다.

저자의 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책이 그러한 우리 아이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보는 재미를 알려줄 것 같다.이같이 ‘꿈같은 상상력이 넘치는’ 그림책 작가로 통하는 저자는 1992년 ‘이상한 화요일’(비룡소 펴냄)로 첫 번째 칼데콧상을 받았으며, 2002년 이 책으로 두 번째 칼데콧상을 수상했다.

오 혜 경 주부·서울 금천구 시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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