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리포트][건강]불치병 태아라고 포기할수 있나요

  • 입력 2002년 12월 19일 16시 37분


/홍권희 특파원
/홍권희 특파원
“어마…포오…조.”

네살배기 나이아는 엄마에게 포도를 달라는 말을 이렇게 했다. 엄마 티어니 페어차일드(35)는 딸이 어떻게든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귀엽기만 하다.

나이아는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났다. 세상에 나오면서 크게 울지도 못했다. 의사들은 생존 가능성을 10점 중 2점만 주었다. 5분 뒤엔 5점으로, 10분 뒤엔 7점으로 높아졌지만 혈압은 낮고 신장기능도 문제였고 심장엔 구멍이 나 있었다.

나이아를 임신한 티어니는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계속 받았다. 남편 그레그 페어차일드(38)와 함께 매사추세츠주 하트포드의 병원에서 세 번째 초음파검사를 받은 것이 1998년 7월. 검사원은 그레그와 티어니 부부에게 태아의 장기를 스크린에 비춰주었다. 뇌, 간, 신장 모두 정상. 이어 스크린에 나타난 아이의 심장은 방이 세 개뿐인 것이 그레그의 눈에도 쉽게 보였다. 비극은 그렇게 찾아왔다. 정밀검사 결과 아이는 심장에 두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고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었다.

98년 11월 티어니와 그렉 부부가 초음파영상으로 곧 태어날 태아의 심장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 4개월전 두 사람은 태아에게 장애가 있다는 의사의 통보를 들었고 7월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다.
1999년 3월 심장전문의의 진료를 받고 있는 나이아. 삶을 위한 투쟁이 시작됐다. 황달에까지 걸린 나이아의 얼굴을 아버지 그레그가 안쓰러운 듯 매만지지만 정작 나이아는 울지도 않고 참을성있게 진찰받고 있다.
1999년 4월 나이아는 심장수술을 받았다. 엄마 티어니가 수술이 끝난 뒤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누워있는 딸을 몸을 굽혀 쳐다보고 있다.
1999년 11월 나이아가 첫 돌을 맞았다. 엄마 아빠 나이아 모두 함께 촛불을 불어 껐다. 그들 모두가 삶을 새로 시작한 1년이었기에.
2002년 10월 유아원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는 나이아. 나이아는 이 유아원이 생긴 이래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발달장애아지만 꿋꿋이 다른 아이들과 함께 배워나가고 있다./사진제공 보스턴글로브(위에서부터)

‘낙태를 할 것인가, 임신을 유지할 것인가.’

당시 뉴욕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던 흑인 그레그와 버지니아대 교육학 박사로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라는 항공 전자 분야의 대기업에서 간부교육을 담당하는 백인 티어니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친구들은 이들을 위로하면서 대부분 낙태를 권했다. 신앙심이 깊었던 가족들은 ‘신의 뜻’이라며 낙태에 반대했다.

심장 수술은 90% 이상 성공할 수 있지만 신체 결함과 정신 지체가 따르는 다운증후군은 치료가 안 된다. 태어나자마자 고통을 받게 될 아이, 게다가 그 아이에게 닥칠 편견과 차별.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의 흔치않은 결혼을 자신있게 결행했던 부부였지만 출산 강행 결정은 쉽지 않았다. 그레그의 아버지 밥의 격려는 흔들리는 부부의 마음을 다잡아주었다.

“이건 비극이 아니란다. 세상의 끝이 아니야. 우리 모두는 결함을 안고 태어난다. 너희 부부가 아이에게 큰 사랑을 주면 아이는 괜찮아진다.”

번민하던 부부는 ‘아이 우선, 다운은 두 번째’라고 결론을 내렸다. 1998년 11월 이렇게 태어난 나이아는 4개월 만에 심장수술을 받았다. 부모는 나이아에게 다른 시련이 닥칠 것을 안다. 조금씩 커가는 나이아를 보면서 티어니는 “이 아이가 발육이 더딜 것이라고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아가 시련을 견뎌내는 것을 돕는 것이 우리 일이고 나중에 나이아가 커서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이들 가족은 버지니아주 샬로츠빌로 이사했다. 그레그는 버지니아대 다든 경영대학원 조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그레그-티어니 부부는 모두 이 학교 출신이다. 티어니도 회사측의 배려로 이 근처의 경영자교육 담당자로 발령받았다. 이곳으로 이사해 얻은 아들 콜도 벌써 두 살이 됐다.

나이아는 차로 5분 거리의 유아원에 다닌다. 170명의 어린이 가운데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는 말꼬랑지 머리의 나이아뿐이다. 나이아는 다른 아이에 비해 키가 훨씬 작고 말도 잘 못한다. 같은 또래의 다운증후군 아이들 가운데 키는 75%, 몸무게는 60%에 해당한다.

이제 나이아는 숫자를 12까지 센다. 누가 도와주면 그 이상도 해낸다. 처음엔 음식을 먹겠다는 의사를 나타내고 싶을 때 병을 핥았지만 지금은 숟가락으로 떠먹을 줄 안다. 처음엔 기저귀깨나 적셨지만 지금은 화장실을 찾는다. 빨강 검정 등 색깔 이름도 알고 네모 세모 등 모양이 다른 것을 구분해낸다. 눈 코 머리 등 신체부위 이름도 웬만큼 안다. ‘버스 바퀴가 굴러굴러 가 마을을 한바퀴 돈다’는 ‘버스 바퀴’라는 노래도 할 줄 안다. 때로는 말보다 더 쉬운 몸짓 손짓으로 해내기도 하지만.

불치병을 안고 있는 태아를 세상으로 초대해 사랑을 듬뿍 주고 있는 부부의 감동스토리는 1999년 12월 보스톤 글로브지(紙)에 실린 장문의 여섯차례 시리즈 기사를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 기사 제목은 ‘나이아를 선택하면서(Choosing Naia)’. 이 신문은 미 전역에서 밀려드는 독자들의 격려편지를 2개면에 싣기도 했다.

임신을 유지하기로 결심한 직후 이들 부부는 이 신문사 미첼 주코프 기자와 그의 부인인 수잔 클레이터 사진기자에게 밀착취재를 맡겼다. 주코프 기자는 16개월 취재 후 쓴 이 기사로 2000년 미국신문편집인협회의 ‘최우수기사 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주코프 기자는 유아원에 다니는 나이아를 추가로 취재해 10월 ‘나이아를 선택하면서’라는 같은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나이아 가족은 최근 여러 차례 미국 주요 TV 프로에 출연해 밝게 자라나는 깜찍이 나이아의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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