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음악 기행]‘로미오와 줄리엣’ 고향 伊 베로나

  • 입력 2005년 1월 6일 16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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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5만의 소도시 베로나는 서쪽으로는 밀라노, 동쪽으로는 베네치아, 남쪽으로는 피렌체, 로마로 통하고, 독일로도 이어지는 지리적 요충지로 고대로마 시대에는 병영 도시였다.

로마제국 최고 전성기에 세워진 베로나의 원형극장 아레나(서기 120∼130년)는 20세기 들어서는 야외 오페라 공연장으로 더 유명하다. 1913년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아이다’ 공연을 비롯해 비제의 ‘카르멘’ 등 대형 오페라들이 자주 무대에 올려진다.

이는 야외극장이면서도 무대의 미세한 소리까지 관중석에 들릴 만큼 음향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원래 그리스인들은 지형을 이용해 반원형 극장을 만들었는데 건축공학 기술이 뛰어났던 로마인들이 두 개의 반원형 극장을 마주 보게 해 타원형 극장을 만들었다. 장축 75.68m, 단축 44.43m 규모의 아레나는 로마의 콜로세움보다 반세기 뒤에 지어졌다.

로마시대 이곳에서는 맹수 사냥과 검투사 경기가 벌어졌는데, 특히 검투사 경기는 최고의 볼거리였다. 관중의 함성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고, 경기장 바닥에 깔아놓은 모래는 검투사들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곤 했다. 아레나란 바로 ‘모래’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나왔다.


로마제국 전성기때 세워진 원형경기장 아레나. 현재 야외오페라 공연장으로 유명하다. 왼쪽은 줄리엣 집 뜰에 있는 줄리엣 동상. 베로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향으로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사진 제공 정태남 씨

○ 중세 귀족가문 숙명적 혈투… 음악가들에 영감 줘

아레나에서 피의 함성이 멎은 지 1000년이 지난 13세기. 베로나 거리에는 비명 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다. 귀족 가문들 간의 세력다툼으로 곳곳에서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1520년경, 베로나 근교의 비첸차 출신 루이지 다 포르토와 델라 코르테는 베로나의 두 가문, 카풀레티 가문과 몬테키 가문 사이의 숙명적인 불화 속에 꽃핀 슬픈 사랑 이야기를 지어냈다. 주인공은 로메오와 줄리에타.

이 가공의 이야기는 후에 영국으로 전해져 셰익스피어가 이것을 1595년과 1596년에 걸쳐 5막의 희곡으로 고쳐 쓰고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많은 음악가들도 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특히 사랑했던 베를리오즈는 ‘로미오와 줄리엣’ 못지않은 극적인 사랑을 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중 오필리아 역을 맡았던 23세 여배우 해리엣 스미드슨에게 반한 베를리오즈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와 결혼해 가난과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그가 환상 속의 여인을 꿈꾸며 만든 작품이 오케스트라, 독창, 합창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관현악곡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이 밖에도 벨리니는 오페라 ‘카풀레티가와 몬테키가’를, 차이코프스키는 베를리오즈를 본받아 ‘로미오와 줄리엣 환상 서곡’을 작곡했다. 또 구노와 잔도나이도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을 썼으며, 프로코피예프는 발레곡을 작곡했다. 또한 번스타인의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무대를 베로나에서 뉴욕 맨해튼으로 옮긴 ‘20세기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아레나에서 동북쪽으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베로나 중심가인 에르베 광장 근처에는 바로 그 러브스토리의 현장이 있다. ‘줄리엣의 집’은 카펠로 거리, ‘로미오의 집’은 3분 정도 떨어진 아르케 거리에 있다.

○ 우수에 젖은 줄리엣 동상 매년 150만 관광객 맞아

줄리엣의 집 안뜰에 들어서면 갸름한 얼굴과 몸의 줄리엣 상을 만날 수 있다.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우수에 젖어 있는 듯하다. 그런데 오른쪽 젖가슴은 관광객들, 특히 남자들이 만져서 반들반들하다. 줄리엣의 가슴을 만지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소문 때문이다.

한편 성벽 밖의 산 프란체스코 수도원에는 줄리엣의 텅 빈 대리석 관이 보존돼 있는데, 이 빈 무덤은 비극과 비탄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평화와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줄리엣의 집은 사실 13세기에 지어진 이름 없는 2층짜리 건물을 1935∼40년에 복원하여 고딕풍의 문, 창문, 발코니를 덧붙여 실감나게 만든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 집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매년 150만 명이나 몰려와 별의별 사랑의 낙서를 남기고 간다. 사람들은 줄리엣의 발코니나 줄리엣의 무덤이 ‘가짜’라는 사실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저 이곳에서 자신의 꿈을 찾을 뿐이다.

베로나 시내를 걷다 보면 아레나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무대라는 인상을 받는다. 붉은 대리석의 중세 건물, 르네상스와 바로크시대의 저택들이며, 시대를 달리하는 성당들이 즐비하다. 고대 로마의 유적, 중세의 탑, 아치, 성벽, 궁전, 자연과 어울리는 저택, 아디제 강변의 탁 트인 공간, 부드러운 푸른 언덕 등등…. 이 모든 것이 ‘도시’라는 커다란 무대를 구성하고 수많은 옛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건축가 정태남 www.tainam-jung.com

○ 건축가 정태남은

△서울대 자연대 졸업

△1979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선발돼 유학.1989년 로마대 건축학 박사학위(Dott.Arch.) 취득

△로마국가건축사협회 정회원으로 현재 로마에서 활동

△1999년 로마에서 세계식량계획(WFP) 주최 ‘코소보 난민 돕기’ 오페라 공연을 기획 연출, 2004년 경기도립 오케스트라와 함께 청소년 음악회 ‘정태남과 함께하는 이탈리아 음악여행’ 기획 진행

△저서에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 ‘건축가 정태남의 이탈리아 음악여행-베네치아에서 비발디를 추억하며’ ‘건축가 정태남의 로마문화여행-콜로세움이 무너지는 날이면’ 등

▼검투사 경기장 ‘아레나’ 오페라 무대로 변신▼

베로나의 아레나는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폐허의 길에 접어들어 중세에는 사형장, 기사들 간의 결투장, 창녀 굴 등으로 전락했다. 1580년에는 어느 정도 복원돼 권력자들의 힘을 과시하는 행사장이 되었고, 18세기에는 투견과 투우장으로 사용되다가 때때로 연극 공연 무대가 되기도 했다. 그 후 역사유적으로서 고고학이나 역사학의 연구대상으로서만 관심을 끌다가 오늘날처럼 야외오페라의 ‘성전(聖殿)’으로 탈바꿈한 것은 20세기 초반의 일이었다.

베로나 태생의 테너 제나텔로 부부가 아레나를 야외 오페라 공연장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하자 베로나 시정부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 계기.

1913년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맞아 8월 10일 처음으로 아레나 무대에 오른 오페라는 베르디의 ‘아이다’. 거장 세라핀이 지휘를 맡았다. 여름 밤 환상적인 무대에서 펼쳐지는 이 오페라를 보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수천 명의 관중이 몰려들었다. 야외 오페라는 기존의 실내 오페라 공연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마력적인 분위기로 관중을 사로잡았다. 그때 관중석에는 푸치니, 마스카니, 보이토, 일리카 등 이탈리아 오페라계의 거장들과 고리키, 카프카 등 유럽 문화계의 유명 인사들도 앉아 있었다.

이 공연은 20세기 초 ‘세기의 대공연’으로 기록된다. 그 후 ‘아레나는 곧 야외 오페라’, ‘야외 오페라는 곧 베로나’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해마다 여름이면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베로나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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