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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1월 26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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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크롬 화풍은 김기진(당시 프랑스 체류)이 72년 흑색 모노톤 국내전으로 단초를 마련했다.
그 뒤 75년 도쿄 화랑에서 권영우 박서보 서승원 등의 ‘다섯개의 흰색 전’, 77년 도쿄 센트럴 미술관 이우환 곽인식 김창열 박장년 이강소 등 19명의 ‘한국현대미술 단면전’ 등이 이어지면서 선풍적인 화풍으로 자리 잡았으며 국제 화단에도 한국 미술의 독자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모노크롬 회화의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는 회고전이 두 곳에서 열린다. 과천 국립 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사유와 감성의 시대’(내년 2월2일까지·02-2188-6000)와 서울 서초동 한원 미술관의 ‘한국 현대 미술다시읽기Ⅲ-모노톤에 가려진 70년대 평면의 미학들’ 전(12월12일까지·02-588-5642) 등이다.
‘사유…’는 일본의 모노파 화풍을 선도한 이우환씨를 비롯, 김기린, 박서보, 김용익, 김창열, 신성희, 허황, 서승원, 김홍석, 이강소, 한영섭, 윤명로, 권영우, 하종현, 정창섭, 하동철, 최명영씨 등 45명의 대표작 140여점을 선보인다.
이들 작품에는 한국적 모노크롬의 다양한 기법들이 총망라 되어있다. 매직, 연필, 파스텔로 세로와 가로로 획을 긋는 것만으로 화면을 메꾸고, 물감을 손가락에 묻혀 지문을 찍듯 계속 반복작업 한 것, 촛농이나 촛불의 그을음만으로 화면을 채운 작품도 있다.
후반기로 넘어오면 캔버스를 아예 해체해 화폭만 걸어 놓거나 흰색 면장갑을 염색해 늘어 놓은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된다.
모노크롬 화풍은 형상과 이미지를 제거하는 정신적 금욕주의로 화폭을 무한의 공간으로 확장시켜 동양적 노장사상을 표현했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유행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서 그 자체가 하나의 권력화 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미술평론가 김달진씨는 “단색 화면이 아니면 그림이 아니라는 오만과 남의 것은 인정하지 않고 내 것만 최고다라는 식의 편견이 당시를 지배했었다”면서 “미술인들끼리만의 유희, 미술과 대중의 단절이라는 지적들은 이후 사회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80년대 후반 민중미술이 태동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원 미술관의 ‘한국 현대미술…’은 ‘모노크롬 깊이 읽기’를 시도한 기획 전시다. 후반기 획일화 경향을 보이면서 화단의 주도권 쟁탈에만 머무는 바람에 소홀히 취급됐던 모노크롬 화풍을, 늦었지만 미학적 자생적 비평의 관점으로 재조명하는 전시다. 기획자의 시각에 따라 작품들을 재구성했기 때문에 같은 작품도 이렇게 다르게 볼 수 있구나하는 느낌을 받는다. 좌장격인 박서보, 하종현씨는 작품을 출품하지 않았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