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아시나요]문화재자료 1호 ‘욕은지’

  • 입력 2002년 9월 6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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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계양구 계산동 부평초등학교 내에 있는 ‘욕은지’(浴恩池)는 인천시 문화재자료 제 1호다. 문화재자료는 역사적 가치는 있으나 기념물로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

이 초등학교 운동장 동쪽 끝에 위치해 있는 욕은지는 가로 18m, 세로 16m의 작은 연못(90여평)으로 화성 능행차에 나섰던 조선 정조가 인근에서 활을 쏜 뒤 손을 씻은 곳으로 전해진다.

현재 돌다리를 건너 연못 가운데에 있는, 돌로 쌓은 작은 동산으로 갈수 있다.

연못이라고 해서 연꽃이라도 떠 있을 것이라는 생각하고 찾았다가는 실망하기 쉽다.

물을 공급해주는 수원지가 없어 평상시에는 바닥을 드러내 놓고 있으며 비가 오더라도 흙바닥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연못에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보기 힘들다.

부평초등학교 총동창회 총무인 김창식씨(45)는 “1970년대 중반까지는 인근 개울에서 물을 공급해 이 연못에 고기가 뛰어놀았다”며 “연못 가운데의 동산에는 울타리를 쳐놓고 토끼를 키웠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욕은지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향토 사학자들은 1797년(정조 21년) 정조가 부평도호부 청사를 방문해 욕은지 바로 옆에 있는 어사대(御射臺·인천시 문화재자료 제3호)에서 활을 쏜 점으로 미뤄볼 때 그 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1797년 8월 당시 정조의 행차 코스는 현재의 김포∼부평∼안산∼수원이었다. 정조는 당시 김포에 있는 장릉(인조 생부의 능)을 돌아본 뒤 다음날 부평에 도착해 부평부사(富平府使) 윤광석을 만났다.

계양구가 1999년 향토 사학자들과 만든 지역 역사자료인 ‘계양사’에 의하면 당시 윤광석은 임금이 부평에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문무백관, 궁인, 호위병 등 2000여명이 넘는 일행을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 걱정이 됐다.

이 때 인근 방축마을(지금의 계양 2동)에서 집단적으로 모여 살던 부호인 장씨들이 나섰다. 욕은지 일대에 비단을 깔고 산해진미를 차려 놓은 뒤 왕의 행차를 맞은 것.

이같은 융성한 대접에 흥이 난 정조는 어사대에서 힘껏 활을 쏘며 여흥을 즐긴 뒤 욕은지에 손을 씻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경기 수원시 화성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욕은지는 해마다 ‘해반문화사랑회’ 등 지역 문화단체들이 ‘우리지역 바로알기 답사’ 코스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다.

원래 지금 있는 자리에서 조금 동쪽에 있었지만 고종 24년(1887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해 보수했다는 것.

계양구와 인근 부평구, 서구 등지에 있는 초등학교에서도 이 곳을 문화재 견학코스로 지정해 자주 찾고 있다. 욕은지 바로 옆에는 조선시대 지방관청인 부평도호부청사(인천시 유형문화재 2호)도 있다.

부평초등학교 18회 졸업생인 조기준씨(86·전 부평문화원장)는 “욕은지에 있던 물이 사라진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 인근에 건물이 많이 들어서 개울이 사라진 때문”이라며 “또 부평도호부청사는 1969년 부평초등학교 시설을 확장하면서 옮긴 것이다”고 말했다.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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