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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9월 5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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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에서 정년퇴임하는 임희섭교수. 그는 한국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변함 없이 상아탑을 지켜온 학구파 사회학자로 손꼽힌다.김형찬기자 khc@donga.com
임 교수는 퇴임 후에도 고려대 명예교수로 남는다. 5일 연구실에서 임 교수를 만나 학문적 역정, 한국사회학의 현주소, 우리사회의 과제 등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교수님 세대를 한국사회학의 제 2세대라고 부르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제 3세대라고도 하지요. 제 1세대는 한국에 사회학을 도입 소개한 이상백(李相栢), 최문환(崔文煥), 이만갑(李萬甲), 이해영(李海英), 홍승직(洪承稷) 교수 등이고 고영복(高永復), 최재석(崔在錫), 김대환(金大煥) 교수 등을 제 2세대라고도 합니다. 이어 1970년대 초부터 사회학을 연구한 세대가 우리들이에요. 이전 세대가 역사적 접근, 현장답사, 문헌연구 등 전통적 방법론을 따랐던 데 비해 우리 세대는 보다 세련된 방법론을 이용해 ‘한국사회’를 분석하려 했습니다. 또한 앞 세대가 사상이나 이념 등의 문제에 주목했던 데 비해, 우리는 후진 한국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사회발전의 문제에 관심을 쏟았죠.”
-학문적 과정을 회고해 보면 아쉬움은 없으신지요.
“우리 때만 해도 사회학자가 많지 않았고 사회의 요구도 종합적이어서 여러 문제에 대한 진단과 연구가 거시적이었습니다. 사회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처방도 하고 그 과정에서 사회학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세부 문제까지는 깊이 천착하지 못했죠. 하지만 다음 세대에는 분야별로 전문화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습니다. 이념적으로 개방된 사회도 사회학 발전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매스컴이나 대중을 의식해서 다소 경박한 글을 쓰는 학자들도 있는데 이제야말로 한 분야를 깊이 연구하며 장기전을 벌여야 합니다.”
-세계 사회학계에 비춰 볼 때 한국사회학의 현주소는 어디쯤이라고 보시는지요.
“한국의 사회학은 양적 질적으로 엄청나게 발전했고 학자도 많습니다. 학술정보에서도 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회학’ 자체에 무엇을 기여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습니다. 교수가 박사급 조교들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온갖 일들을 감당해야 하는 학계의 현실도 창조적 작업을 어렵게 하는 악조건이지요.”
-평생 한국사회를 연구해 온 학자로서 한국사회의 당면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 추구해야 할 가치는 경제발전, 민주주의, 사회적 평등, 문화적 창달 등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제발전 중심의 ‘압축적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경제발전과 다른 가치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균형 있게 추구되지 못했지요. 이제는 이런 가치들간에 균형을 갖출 단계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는 분야는 정치입니다. 제도정치가 대의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 못하고 있어요. 다행히 1990년대부터 시민운동이 제도정치를 많이 보완해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시민사회가 사회적 통합의 증진 등에 큰 역할을 할 겁니다. 국민들도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의 활성화에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임희섭 교수는 누구?
임희섭 교수는 1950∼60년대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이상백 이만갑 교수 등 제 1세대 한국 사회학자들의 지도를 받고 1970년 미국 에모리대에서 미국 흑인의 인권운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2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가 된 뒤 사회불평등과 문화변동 등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온 그는 한국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변함 없이 상아탑을 지켜온 학자로 학구파로 손꼽힌다.
그가 주도한 1970∼80년대 전국 빈곤실태에 관한 연구는 이후 수십 개의 법안이 만들어지는 바탕이 됐다. 또한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과 외래문화의 선택적 수용이라는 문제에 대해 ‘한국문화의 적합성 통합성 정체성’이라는 기준을 내세움으로써 학계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이 주제를 다룬 글은 고교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정년퇴임 이후 그는 주저인 ‘한국의 사회변동과 가치관’(나남·1994), ‘집합행동과 사회운동의 이론’(고려대출판부·1999)을 보완해 증보판을 내고 학술원 회원으로서 연구활동에 전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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