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학원이 달라진다]집에서 직접만드는 듯한 재미

  • 입력 2002년 7월 18일 16시 06분


광주요갤러리의 요리강좌 풍경 [사진=전영한기자]
광주요갤러리의 요리강좌 풍경 [사진=전영한기자]
《오늘의 메뉴는 '과일살사를 곁들인 닭가슴살 요리'

기름기가 없는 건강음식이라 마치 온천에 몸을 담그는 것처럼 좋다는 뜻의 '스파(spa)푸드'로 불린다. 9일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라퀴진 요리학원. 10명의 수강생이 메탈빛으로 도색된 부엌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 시누이들 수다떨듯 대화를 나누며 요리를 만든다.

요리가 완성되자 수강생들은 준비해온 디지털카메라의 플래시를 터뜨린다. 집에서 다시 만들어본 뒤 완성된 요리 모습과 대조하기 위해서다.》

다음은 식사시간이다. 주방 옆에 따로 마련된 식탁은 고급 레스토랑의 룸과 다름없다. ‘보스’ 스피커에서는 발라드음악이 흘러나오고, 푸른색 분홍색의 생화가 테이블 여기저기에 장식돼 있다. 투명물병에는 레몬과 파슬리를 띄워 청량감을 강조했다. 수강생들은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곱게 장식된 그릇에 샐러드 메인요리 디저트를 차례로 담는다. 수강생 김지현씨(33·영어강사)는 “집에서 요리를 만들어 테이블 세팅하는 재미, 근사한 식당에서 요리를 사 먹는 재미, 어머니회에 참석한 것 같은 재미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라퀴진' 요리학원에서는 기름기가 없는 흰살 고기나 푸른 야채를 주로 사용하는 '스파푸드'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카르티에 등 명품패션업체들은 이 학원과 제휴해 VIP고객들에게 ‘요리 접대’를 하기도 한다. 10여명 정도 소규모 인원을 초대해 강좌와 함께 안심 스테이크, 와인, 디저트 등으로 이루어진 8만원 상당의 세트요리를 제공한다. 라퀴진의 박선영 팀장(30)은 “가정에 초대돼 음식을 대접받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고급빌라의 모델하우스같은 인테리어 구성에 힘쓴다”고 말했다. 이 곳에는 ‘유학생 클래스’가 별도로 있어 홀로 유학을 준비 중인 청춘남녀들이 ‘자취’용으로 간단히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다루는 강좌도 들을 수 있다. 학생들은 이 강좌의 식사시간을 이용해 서로 유학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서울의 신생요리학원들이 레스토랑, 파티장, 사교접대공간, 갤러리, 인테리어전시장 등과의 경계를 넘나들며 복합엔터테인먼트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단순히 요리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멋들어지게 세팅해 먹는 법까지 강의해, 쿠킹과 스타일링은 자연스레 하나의 코스로 묶이는 추세다.

강남구 압구정동 ‘광주요 갤러리’에서는 4월부터 ‘꾸밈과 드림’이라는 요리, 테이블 스타일링 강의를 시작했다. ‘여자친구들을 위한 포트럭 파티’ ‘외국 손님 초대상’ ‘남편친구들 모임’같은 다양한 테마에 대한 상차림을 가르쳐 준다.

이곳은 갤러리를 조금씩 변환해 요리공간으로 쓰기 때문에 미술전시장의 느낌이 잘 살아난다. 백자 청자 선인장 굴거리나무 비취색찻잔 컬러냅킨 등이 색색의 조명 아래 세팅돼 있으며 벽에는 현대화가들의 작품이 걸려 있다. 사람들은 칵테일바같이 꾸며진, 아일랜드스타일의 주방 옆에 걸터앉아 요리를 체험한다.

'라퀴진' 요리학원에서 만든 스파푸드

‘광주요 갤러리’에서는 친구나 동료들끼리의 친목모임을 위한 소규모강좌도 ‘맞춤제작’해주고 있다. 수강생 조선미씨(25·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는 “2주에 한 번씩 친구들과 함께 모여 요리학원에 온다. 예전에 친구집에 모여서 놀 때 친구 어머니가 음식을 해주시는 것 같던 정겨운 분위기를 느낀다. 그래서인지 파스타나 스테이크보다는 육개장이나 떡볶이 같은 ‘가정식’ 요리 강의를 주로 청한다”고 말했다. 광주요의 요리연구가 배선혜씨는 “식당처럼 많은 재료가 필요치 않기 때문에 최고급 식재료를 소량 구입해 전부 쓴다. ‘가정 건강식’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도 충족시키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지인들끼리 갖는 소규모강좌의 경우 요리강사는 수강생들의 기대감을 부풀리기 위해 일부러 다음 시간에 배울 요리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

강남구 삼성동의 주방가구 전문회사인 ‘넵스’는 지난달부터 주방기기와 홈시어터를 갖춘 이벤트홀에서 요리강좌를 열고 있다. 22일에는 무 냉수프 만들기와 오렌지 멜론 키위 등 과일깎기 강좌가 열린다. 행사가 없는 날에는 20명 안팎이 즐길 수 있는 소규모 파티장소로 유료대여해 준다. 기업체의 회식, 와인동호회 모임, 무비카페용으로 자주 쓰인다. 프로젝션TV에 DVD를 틀어놓고 체리목이 덮인 와인저장고에서 와인을 골라 먹을 수 있으며, 오븐에 LA갈비 소시지 등을 구워 바비큐를 할 수도 있다.

숙명여대 캠퍼스에 9월 들어설 ‘코르동 블루’요리학원은 수강생들을 위한 별도 연회장을 준비 중이다. 효창운동장의 녹색 잔디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연회장을 만들어 고급살롱 형태로 내부장식을 하고 있으며 생일파티나 사교모임을 위한 공간으로 수강생들에게 대여해 줄 작정이다. 숙명여대는 또 코르동 블루를 1일 관광코스로 개발해 직접 요리를 실습한 뒤 전용식당에서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볼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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