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교수의 여가클리닉]'월드컵 독수공방' 탈출

  • 입력 2002년 5월 30일 15시 21분


Q : 청주에 사는 가정주부 윤혜자입니다. 요즘 월드컵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인 것 같아요. 저희 집도 예외가 아닙니다. 별다른 취미가 없는 제 남편은 축구에 온 인생을 건듯 합니다. 오래 전부터 흥분해서 축구 시작하는 날짜만 기다려 왔어요. 앞으로 한달 동안 축구에 별 관심이 없는 딸과 저는 어떻게 휴일을 보내야 하나요?

A : 많은 여성들이 축구를 재미없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다 큰 어른들이 공하나 놓고 정신없이 뛰어 다니다가 네모로 쳐 놓은 그물에 공이 굴러들어가면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는 황당한 놀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혜자씨! 그러나 남편의 몇 가지 안 되는 즐거움을 타박하지는 마시고 함께 즐겨보세요. 관심 없는 축구를 억지로 즐기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이 경기하는 날,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혜자씨 동창 부부 몇 쌍을 초대하는 겁니다. 아내들이 주도하는 모임에는 서먹해 하는 남편들도 축구를 함께 보자고 하면 무척 즐거워할 걸요?

사실 축구는 혼자 보는 것보다는 함께 응원하며 보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습니다. 텔레비전의 정보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보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며 구경하기 때문입니다. 경기 내용이나 축구선수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설도 나누면서 흥분할 때, 축구는 자신들의 경기가 되는 거죠. 일방적인 축구 시청이 아니라 관람하는 사람들끼리의 상호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에 재미있다는 겁니다.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이야기가 군대이야기와 축구이야기라고 하죠. 이번에 남편과 친구의 남편들이 만나 축구를 보고 난 다음에는 분명히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가 또 나올 겁니다. 혜자씨! 그래도 처음 듣는 것처럼 재미있게 들어줘야 합니다.

아내 앞에서는 무뚝뚝한 남편이 유흥업소의 여자들 앞에서는 무척 재미있는 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이야기를 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뻔한 군대나 축구 이야기도 유흥업소의 여자들은 아주 재미있게 들어줍니다. 그래야 돈을 벌기 때문이죠.

저는 축구를 잘 못합니다. 그러나 군대의 내기축구에서는 무척 중요한 선수였어요. 저는 주로 우리 편이 지고 있을 때 수비수로 투입되곤 했죠. 제 임무는 오직 한가지였습니다. 공격해오는 상대편 고참의 정강이를 군화로 걷어차는 것이었죠. 화가 난 고참은 제 멱살을 잡고 흔들었고, 이때를 기다렸던 우리 편 고참들이 뛰어 들어 한바탕 큰 소동이 일어납니다. 결국 경기는 중단되죠. 물론 무승부이고요.

이번 월드컵 기간에 제 아내는 수십번 들은 이 이야기를 최소한 10번은 더 들어야 할 겁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 아내는 재미있게 들어야 합니다. 베지밀과 보름달 빵에 목숨 걸었던 제 청춘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www.leisure-studi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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