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양의 대인관계성공학]"아빠, 잘난척 하지마"

  • 입력 2002년 5월 16일 14시 42분


어느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초등학생인 아들, 자랑스럽게 아빠 품에 뛰어들어 소리친다. “아빠, 저 오늘 한문 시험 봤는데, 몇 등 했게요?”

당연히(?) 1등을 기대한 아버지, 얼굴 가득 웃음이 번져간다.

“우리 장한 아들. 그래 몇등인데?”

“5등이에요, 5등!”

아버지, 자기도 모르게 불쑥 말이 나온다.“1등이 아니고?”

그렇게 해서 아들을 크게 실망시킨 아버지, 며칠 지나지 않아 또 한번 실수를 하고 만다. 아들을 데리고 아이 할아버지댁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모처럼 어린시절로 돌아가 잔뜩 향수에 젖었던 그는 문득 어릴 때 아버지가 사 주시던 자장면 생각이 난다. 그러면 그냥 아이한테 우리 자장면이나 먹고 들어갈까 하면 될 걸 쓸데없는 추억담을 꺼내고 만다.

“너 아빠 어릴 땐 가장 맛있는 게 뭐였는 줄 아니? 자장면이야. 시험 잘 보거나 하면 할아버지가 아빠한테 자장면 사 주시곤 했지. 정말 맛있었는데…. 그땐 내 덕분에 형이랑 누나들도 덤으로 자장면 많이 얻어먹곤 했지.”

그 대목에서 그는 잠깐 뒷좌석에 타고 있는 아들의 눈치를 슬쩍 살핀다.

녀석아, 아빤 어릴 때 그렇게 공부를 잘했단 말야, 속으로 은근히 뻐기며 아들의 한 마디를 기대한다. “우와, 아빠, 굉장해요!”

그러나 잠시 후 뒷좌석에서 날아온 아들의 한마디는 이랬다. “되게 잘난 척 하네!”

그 후 서로 충격에서 헤어나오느라 30초쯤 침묵이 흘렀다던가. 아들은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한 마디에 놀라서, 아버지는 아차, 내가 또 실수해서 아들한테 한방 당하는가 싶어서….

이 얘기는 어느 분이 깊은 반성(?)과 더불어 들려준 자신의 일화다. 얘기를 듣고 나는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 땅의 부모들치고 아이들과 그 비슷한 대화를 나눠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툭하면 내가 어릴 땐 정말 모범생이었다는둥, 공부를 잘해 동네 신동으로 꼽혔다는둥, 축구하면 자기여서 한때는 제 2의 차범근 소리도 들었다는둥,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그런 얘기를 듣고 부모가 기대한 대로 “우리 엄마 아빤 정말 대단하구나!”하고 감동을 보여준 아이도 아마 없었으리라. 그러나 부모 자식 사이란 때때로 그렇게 서로 조금씩 어긋나며,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 조금씩 신뢰를 쌓아가며 서로에게 배워가는 사이가 아닐는지…. www.mind-open.co.kr

양창순 신경정신과 전문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