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기업 인사담당자 '문제의식-창의성' 제1조건 꼽아

  • 입력 2002년 5월 16일 14시 42분


2001년 취업박람회
2001년 취업박람회
요즘 기업인들을 만나면 “10년 뒤에 한국은 무엇으로 먹고 살까”라는 걱정을 많이 한다. 한국이 경쟁력을 갖춘 제조업 분야 등에서는 갈수록 신규 진출할 시장이 줄어드는데 수요는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가 진행될수록 자연히 대화의 초점은 ‘사람’에게로 모아진다.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아이디어도,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도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 기업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인재상은 무엇일까.

동아일보 위크엔드팀이 인사컨설팅 다국적기업인 타워스페린과 함께 시가총액 상위 30개 기업의 인사 담당자 및 팀장급 이상 임원들을 대상으로 10개항을 설문조사한 결과 ‘문제의식과 창의성 있는 사람’이 기업이 가장 시급하게 요구하는 인재의 모습인 것으로 나타났다.

첫 질문으로 30개 기업에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의 요건’에 대해 ‘분석력’ ‘문제의식’ ‘팀워크’ 등 8개항의 답을 주고 복수응답하도록 했다. 그 결과 ‘문제의식과 창의적 사고’를 선택한 비율이 63.3%로 가장 높았다. 다음 순위는 ‘대인관계 및 팀워크’로 33.3%. 또 같은 답안 보기를 주고 ‘향후 비즈니스에서 어떤 능력이 가장 중요한가’라고 질문한 결과 ‘유연성 및 변화적응력’을 꼽은 비율이 66.6%로 가장 높게 나왔다. 그 다음 순위는 ‘문제의식과 창의성’으로 56.6%.

요약해보면 ‘문제의식을 갖고 창의적인 사고를 하면서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인물’을 기업들이 원하고 있는 셈이다. 즉 ‘돌격 앞으로’의 인재형보다는 ‘많은 고민을 통해 기존의 것과는 차별화되는 서비스와 물건을 만들어 내는’ 인재가 필요한 것이다. 이번 조사를 함께 진행한 타워스페린의 박인호 부장은 “기존 비즈니스 관행으로는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기업들이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의 신입사원 면접

국내기업 직원과 비교해 외국계기업 직원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고 했더니 △업무에 대한 전문지식(53.3%) △문제의식과 창의적 사고(43.3%) △유연성 및 변화 적응력(33.3%)을 들었다. 인사담당자들이 ‘외국계기업 직원들이 현재 국내기업들이 원하는 인재상에 더 부합한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셈이다.

한편 2, 3년 내 입사한 신입사원들에게 가장 부족한 점을 묻자 대인관계 및 팀워크가 60%로 가장 높게 나왔고 적극성 및 추진력이 43.3%, 전문지식이 36.6%로 나왔다.

박인호 부장은 이에 대해 “이상적으로 그리는 인재상과 당장 써 먹을 수 있는 사람에 대해 인사 담당자들이 이중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것 같다”며 “특히 신입사원의 경우 이상형보다는 기존 사원들의 태도와 비교해 부족한 점을 꼽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조사대상 30개 기업을 △일반제조업 △유통 및 서비스업 △금융업 △전자업 △통신서비스업 등으로 나눠 원하는 인재상을 분석한 결과 업종마다 조금씩 차이를 드러냈다.

LG증권과 삼성증권 등은 ‘업무에 대한 전문지식’이 향후 고용할 인재들에게 요구된다고 밝혔다. 즉 금융기법이 점차 고도화됨에 따라 전문지식을 가진 인재에 대한 수요가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내 게시판에 붙은 기업의 구인광고를 들여다보는 대학 졸업생

KTF와 LG텔레콤 SK텔레콤 등은 한결같이 유연성 및 변화적응력을 갖춘 직원이 향후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이라고 밝혔다. 변화무쌍한 이동통신업계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반면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제조업체로 분류된 7개 기업체 중에서는 5개 업체가 문제의식과 창의적 사고가 절실하다고 답해 과거의 규격화된 비즈니스 모델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지를 드러냈다.

신입사원 채용과 경력사원 채용에는 어느 쪽에도 중점을 두지 않고 상황에 따라서 유연하게 대처하겠다는 기업이 77%였다.

한편 대학교육에 대한 기업들의 불신은 높게 나타났다. 대학교육을 통해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고 대답한 기업은 ‘그렇다’와 ‘다소 그렇다’를 합해 26.6%. 반면 36.6%가 ‘그저 그렇다’, 26.6%가 ‘별로 그렇지 않다’, 10%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 대학교육의 효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높았다. 대학이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기업들은 △전문지식 교육의 미흡(7개 기업) △분석력, 개념적 사고력 등 지적 능력 개발교육의 미흡(6개) △문제의식 및 창의력개발의 소홀(5개) 등의 순으로 꼽았다.

●우리기업이 원하는 인재의 모습

- 현대자동차 인사실장 김종곤 이사

능력은 뛰어나나 열정이 부족한 사람과 능력은 부족하나 열정이 있는 직원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열정이 있는 직원을 선택할 것이다. 예를들면 자동차를 너무 좋아해 차를 직접 튜닝할 정도의 스포츠카 마니아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일본어를 습득할 정도의 열정을 지닌 직원이 필요하다. 즉 벤처와 도전정신으로 실제 기업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절실한 것이다.

- KTF 김영근상무

몇년 전 대전본부에 근무할 당시 ‘쓸데없는 얘기만 한다’는 핀잔을 들었던 직원이 있다. 그 친구는 당시 “기지국 유지보수를 뭣 때문에 우리가 하느냐. 외부에 맡기자”고 얘기했다. 모두들 “일은 안 하고 한가한 소리만 한다”고 했지만 결국 그의 제안은 얼마 뒤 회사에서 정식 채택됐다. 항상 다르게 생각하고 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조직원이 있어야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LG전자 한만진 상무

가장 기억에 남는 사원은 면접시험 때 미리 LG의 이미지 홍보전략에 대해 자료도 수집하고 직접 의견을 들어 10쪽이 넘는 리포트를 갖고 온 신입사원이다. 일부에선 지나치게 계산된 행동이 아니냐고들 얘기하지만 그 친구처럼 도전적이고 자발적으로 아이디어나 일을 찾는 사람을 우리는 원한다. 엉뚱한 구석이 있더라도 남들보다 앞선 그런 친구 말이다.

- 신한은행 허중옥 부행장

영업점 관리사원의 경우 영업점에서 애로사항을 토로하기 전에 수시로 현장을 찾아가 개선사항을 직접 찾아오는 직원들이 있다. 화장실 입구의 위치나 정수기가 놓이는 자리를 바꿔야 한다든지 고객들이 실제 피부로 느끼는 것들을 찾아온다. 기존의 제도나 관행 등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작은 것에서부터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려는 인재를 우리는 원한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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