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장인정신 獨步(9)]전각 작가 서용철씨

  • 입력 2002년 5월 8일 18시 12분


기자가 최근 인천시 남동구 만수동 청전인방(淸田印房·032-467-9164)을 찾았을 때, 사장이자 전각(篆刻) 작가인 서용철(徐容哲·47)씨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5년째 성서 230만자를 옥돌에 새겨넣는 작업을 하느라 생긴 관절염 탓이다. “10시간 정도 스트레이트로 작업하면 나중에는 등줄기가 결리면서 순간적으로 손마디가 마비되곤 합니다. 일에 미치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통증이죠.”

그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성서 전각작업에 매달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97년 천주교 예비신자가 된 후 우연히 성서 필사본 전시회를 관람하다 ‘이를 돌에 새겨야 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된 것.

“순수한 동기로 시작했지만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전각용 해남옥돌을 구입하고 매일 성경 구절의 신성함을 돌에 아로새기는 일은 적지 않은 부담이었습니다. 그래도 신구약과 외경 등 천주교 성서 73권 중 80%를 끝낸 상태입니다.”

서씨는 요즘도 하루 12시간 이상 작업에 매달린다. “하루에 여러 개를 새기면 작품에 불어넣을 기가 흔들린다”며 하루에 한 개만 새긴다는 고집을 꺽지 않고 있다. 그는 2년 뒤 이 작업을 마치면 미국 일본 등 순회전시를 갖고 한국 전각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서씨는 중학교 때부터 ‘파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78년 군 제대 후 인장업을 시작한 그는 90년부터 ‘전각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대한민국 국전, 인천 전각대전 등에서 입상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그는 회화 서예 등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토양이 척박한 전각 분야에서 지금까지 3500여개의 돌에 글자를 새겨넣으며 지난해 한국기네스협회로부터 전각 부문 한국 신기록 인증서를 받기도 했다. 전각 분야의 거목으로 통하는 청나라 말기의 전각 작가 오창석도 팔십 평생 동안 남긴 전각 작품이 1374개에 불과할 정도니 그의 노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만 하다.

서씨는 요즘 50세를 앞두고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50세가 넘어가면 자신의 기(氣)가 빠져 다른 이에게 행복을 불어넣을 수 있는 길인 전각 작업이 사실상 힘들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까지 받지 않았던 제자를 본격적으로 기를 계획이다. 어떤 제자를 원하느냐고 묻자 “평생 미친놈 소리를 들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하는데 지금까지는 없었다”고 했다.

그의 꿈은 ‘전각 미술관’을 세우는 것이다. 재작년 인천에 ‘전각 갤러리’를 열었지만 경영난으로 1년만에 문을 닫는 아픔을 겪었던 그는 “개인적인 수입이 별로 없어 정부 차원의 지원이나 후원자가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씨는 최근 레이저 등 기계로 만드는 도장에 대해서도 ‘뼈있는 말’을 던진다. “사람들은 전각을 잘 모릅니다. 인감 하나도 쉽고 싸게 구입하려 하죠. 이 때문에 수작업을 하는 장인들은 조만간 사라질지 모릅니다. 서예와 함께 전각 예술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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