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게이트 패션'…최규선-진승현 '패션화법' 화제

  • 입력 2002년 5월 2일 14시 15분


검찰에 출두할 당시의 최규선씨(왼쪽)와 진승현씨
검찰에 출두할 당시의 최규선씨(왼쪽)와 진승현씨
노란색의 이탈리아제 넥타이, 최신 스타일의 정장, 웬만해서는 어울리지 않는 노란색 넥타이와 연보라색 줄무늬 셔츠의 묘한 매치….

체육복표사업 관련 의혹사건인 ‘최규선 게이트’의 주인공으로 최근 검찰에 출두한 미래도시환경 대표 최규선씨(42·구속)는 밝고 비싸 보이는 옷차림, 턱을 약간 치켜 올린 당당한 포즈로 카메라 플래시를 받았다. 최씨는 밤샘 조사를 받은 뒤에도 후줄근해진 옷을 갈아입기 위해 비서에게 “베르사체 정장을 가지고 오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화려한 차림으로 검찰청의 포토라인에 섰던 인물은 진승현 MCI코리아대표였다. 2300억원대 불법대출과 관련한 정관계 로비의혹 사건인 ‘진승현 게이트’의 주인공인 진씨는 검찰 출두 당시 시가 1000만원 상당의 에르메스 가방을 들고 같은 브랜드의 허리띠를 맨 명품족의 모습이었다.

이들은 현 정권 들어 발생한 엄청난 권력형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모습이 수시로 신문과 TV에 등장함으로써 시중에서는 이들의 패션을 입에 올리며 ‘게이트 패션’으로 부르고 있다. 최씨를 ‘화려하지만 트래디셔널한 명품족’으로, 진씨를 ‘트렌디한 명품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세계정신분석정치학회 백상창 이사(신경정신과전문의)는 검찰에 출두하는 최씨의 노란색 넥타이에 주목했다. 백 이사는 “자신에게 다가올 우울한 현실을 부인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떳떳하다’는 반감을 밝은 색을 통해 나타내고자 한 것”으로 해석했다. 백 이사는 “화려한 차림에 억지로라도 옅은 미소를 잃지 않은 것은 최씨가 미국 정치인들과의 친분을 통해 체득한 미국식 정치 쇼맨십의 모방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최씨는 또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책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한국어판을 들고 있었다. 수감될 당장의 처지와는 판이한 세계화에 관한 책을 선택함으로써 ‘나는 떳떳하다.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것이다’라는 항변의 메시지와 ‘이 정도 일에 개의치 않는다. 세계를 내다본다’는 과시효과를 동시에 전달하려 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수수한 출두형 복장’ 대신 성공한 비즈니스맨의 이미지 연출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일부에서는 이들을 ‘소환대상자의 포스트모더니즘’이라 일컫기도 한다.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헤어스타일

최규선씨의 헤어스타일은 선이 단정하고 이마를 일부 드러내는 ‘스탠더드 형’. 구속되는 날에도 헤어젤을 바른 뒤 ‘각’을 잡았다. 가르마는 머리숱을 8 대 2 또는 7 대 3의 비율로 나눈다. 트렌디하지는 않지만 전통적으로 ‘성공남’의 이미지를 풍긴다. 전문가들은 최씨의 피부상태 등을 고려하면 얼굴스팀마사지 서비스까지 해주는 유명 호텔의 이발관 작품일 것으로 분석한다. 반면 진승현씨의 경우 뉴욕 월가 ‘증권맨’들의 전형적 헤어스타일. 5 대 5 비율로 탄 가르마를 중심으로 볼륨을 약간 넣어 머리를 세움으로써 자유로운 느낌을 연출했다. 연예인들과 친분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들이 즐겨 찾는 서울 강남의 고급미용실 단골로 추정된다.

●슈트

두 사람 모두 해외 명품을 좋아하지만 소화 방식은 상당히 다르다고 동덕여대 간호섭 교수와 서울컬렉션 한영아 디렉터는 설명한다. 진씨가 미국 MBA출신 억대 연봉자들이 선호한다는 ‘아르마니’ 정장 중에서도 최고가인 블랙라벨을 즐겨 입는 ‘트렌디한 여피룩’이라면 최씨는 ‘과시욕 강한 정치인 스타일’로 분류된다. 진씨는 명품 중에서도 고가이지만 명품 티가 덜 나는 ‘에르메스’ ‘질 샌더’풍 정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최씨는 디자인과 색이 화려해 명품이라는 ‘티’가 쉽게 드러나는 ‘베르사체’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분석이다. 키가 작은 편이라 서구인 체형에 맞게 만들어진 수입 명품이 잘 맞지 않을 수 있는 데다가 정치인들이 즐겨 찾는다는 서울 중구 소공동 일대의 고급 맞춤 양복점을 단골로 삼았을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스리버튼의 슈트 상의나 튀는 색상의 넥타이를 선호한 것은 체형을 공세적으로 커버하려는 코디네이션으로 읽힌다.

●넥타이

최씨의 차림새에서는 베르사체 풍의 넥타이가 자주 발견된다. 반면 진씨는 명품에 익숙한 사람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미니멀한 디자인의 에르메스, 질 샌더를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소품

진씨의 에르메스 서류가방은 순서를 기다려야 겨우 구입할 수 있다는 ‘명품 중의 명품’. 또 에르메스 허리띠의 경우 브랜드를 말해주는 ‘H’자가 버클에 조그맣게 드러나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는 제품. 진씨는 조사과정에서 에르메스 허리띠를 밝은 회색 정장에는 밤색, 짙은 회색 슈트에는 검정색으로 코디해 같은 디자인의 제품도 색깔별로 다양하게 구입하는 ‘골수 명품족’의 면모를 드러냈다. 반면 최씨는 눈에 띄게 소품을 드러낸 적이 없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