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김-이승재기자의 테마데이트]우문현답

  • 입력 2002년 4월 11일 14시 08분


●우문현답①

이〓최근 몇몇 코미디언이 선생님 흉내를 내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말투의 과장은 있지만, 선생님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다는 뜻 아닐까요?

앙〓웃기는 건 좋은데요. 그 방송작가나 PD나 출연자의 머리가 굉장히 나쁘다는 걸 알 수 있죠. ‘날씨가 덥다’는 표현을 “아아, 너무 핫(hot)해요”라고 말하는 걸 한 번 보았는데요. 물론 ‘핫(hot)’이란 단어는 틀리지 않지만, 제가 그렇게 쓰지는 절대로 않잖아요? 저에 대해 얼마나 깊이있게 연구하고 공부하지 않았으면…. 저는 “베리 굿(very good)인데요”란 표현도 절대로 안 써요. 영어의 깊이와 그 세계를 알면 그렇게 저를 희화화할 수 없는 거죠. 제가 쓰는 표현은 아니지만 차라리 “너무 엑설런트해요” 아니면 “이거 너무 원더풀해요”라고 했다면, 코미디에선 약간 세련되게 다가갈 수 있겠지만요. 저는 그런 사람들 굉장히 이그노어(ignore·무시하다)해 버려요.

●우문현답②

이〓선생님은 패션쇼 현장에서 늘 2명의 보디 가드와 함께 움직이시죠. 그들의 얼굴은 강인해 보이기 보다는 감성이 풍부한 미소년 같은데요. ‘보이지 않는 적(敵)’을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가 떨어지지 않을까요? (그들은 경호 업체에 소속된 무술 유단자들이다.)

앙〓도대체 누가 저를 공격하겠어요? 권위의식이나 과시적인, 뭐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에요. 그들은 보디가드라기 보다는 저의 어시스턴트(assistant·협력자)죠. 함께 행동하면서 상대의 의자를 바로 놓아드리거나, 안내를 친절히 해 드리죠. ‘경호원’이라면 굉장히 우락부락한 사람이 필요하겠지만, 그런 남성상은 저의 이메이지(image·이미지)와 조화되질 않죠. 그들은 지성과 교양을 갖춘, 정신적으로 지적이고 예의바른 사람들이에요.

●우문현답③

이〓앙드레 김 패션쇼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예외없이 기다란 장화를 신는데요. 선생님의 로맨틱한 의상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닐까요? 장화는 왠지 마초(macho)적이고 파시즘의 냄새도 나고….

앙〓오히려 그런 걸 의도한다고나 할까요? 장화를 신으면 걸음걸이가 당당해지거든요? 제 무대에는 남성 TV 영화 스타들이 등장하는데요. 일류일수록 자신의 분야가 아닌 것에는 굉장히 겸손하고 신경을 극도로 써요. 어떻게 걸어야 할 지를 너무 걱정하고…. 장화는 신는 순간 남성적인 자신감을 심어주죠. 게다가 177∼179㎝ 키의 여성 전문모델들 사이에서 부각되려면 굽을 좀 높여야 하거든요? 일반 구두로는 한계가 있죠.

●우문현답④

이〓선생님께선 후진양성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일부 지적이 있습니다만….

앙〓(흥분이 섞인 단호한 어조로) 디자인학원이 있습니다. 서울부터 지방까지 대학에 의상학과가 있고요. 개인 디자인학원도 수없이 많습니다. 저는 너무 바빠요. 인터뷰하는 이 순간도 저의 두뇌의 100%는 아니지만, 수 십 퍼센트는 4월 22일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릴 패션쇼 구상에 몰두해 있어요. 저는 직접 머리로 구상해서 디자인하는, 독창적인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비난을 하는 사람들은 저를 시기하는 일그러진 아주 소수의 집단입니다. 대학강단에 서고 학원을 경영하는 것만이 후진양성일까요? 제 의상실 제작부에는 일곱 명의 의상학과 출신이 있는데요. 제가 그들에게 제 작품세계를 설명하고 함께 작업하는 과정은 산교육이 아닐까요? 저는 40년간 후진양성한 셈이죠. 그렇죠?

●우문현답⑤

이〓날카로운 질문이랍시고 던졌는데, 선생님 답변을 들으니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군요. 오늘 대화의 테마는 ‘우문현답’으로 하겠습니다. 어떠세요?

앙〓아아, 아녜요, 아녜요. 그러면 이기자님 혼자만 너무 일그러진 모습이 되시잖아요. 그렇죠?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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