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한불문화축제 총괄 파트릭 모리스 佛 문화참사관

  • 입력 2002년 3월 25일 16시 46분


“영어로 김소월 시인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어요. ‘편안한 시(詩)구나’라고만 생각했고 큰 감흥은 없었는데, 나중에 한글로 읽으니 마음이 한참 울리도록 여운이 남더군요.” 18일부터 주한 프랑스대사관 문화참사관으로 일하는 파트릭 모리스(52·사진)는 ‘엉터리 영어로 번역된 한국 문학’으로 말문을 열었다.

“김소월 시를 언어학적으로만 번역하긴 쉽죠. 어휘도 산, 꽃, 이런 것들이거든요. 하지만 단어만 1 대 1로 바꿔놓으면 더 이상 김소월 시가 아니죠.” 모리스 참사관은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10번도 넘게 프랑스어로 옮겨 봤다. 그 중 어느 것도 아직 맘에 들지 않는다.

파리에서 태어났고 부모님도 모두 프랑스인인 모리스 참사관은 15세 때인 65년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하나로 유럽의 엔지니어팀이 한국에서 경인고속도로, 인천 제2항구 등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그의 아버지도 엔지니어 중 한 명이었다.

“15세였죠. 경험이 생생하게 평생 남을 때.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할 때.” ‘그때’ 1년 반의 한국 경험이 그의 인생을 결정했다. 프랑스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82년부터 2년간고려대에서불문학을강의했다. 한국 문학을 본격적으로 접한 것은 이때부터.

그 후 프랑스 국립동양학대학의 한국학과 교수, 학과장을 지냈고, 현재 프랑스 악트쉬드 출판사의 한국문학총서 책임자와 한국학 연구지 ‘르뷔 단군’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 한국 문학 20여권이 그의 손을 거쳐 프랑스어로 출판됐다.

10여년 전만 해도 프랑스어로 소개된 한국 문학은 거의 없었다. 한국 재단에서 받은 지원금으로 출판되는 경우는 있었지만 ‘독자가 없는’ 책이었다.

“출판되는 책의 가짓수만 많다고 한국 문화가 프랑스에 알려지는 것은 아니에요. 공신력 있는 출판사를 통해 인정을 받아야죠.”

그가 번역한 책들은 갈리마르 악트쉬드 등 프랑스의 내로라 하는 출판사를 통해 나왔다. 그는 “작품과 번역의 질이 뒷받침되지 않은 책이 나오면 한국 문학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다”고 덧붙였다.

‘부부 번역팀’이라는 그의 말처럼 번역서는 대부분 부인인 서강대 불문과 최윤 교수와의 공역. 단어의 쓰임을 놓고 부인과 논쟁도 벌인다.

“작가가 어떤 생각에서 이 작품을 창작했고, 어떤 맥락에서 그 어휘를 썼는지 감을 잡아야죠. 조세희 황지우 등 작가분들을 자주 만나요.”

조선시대의 고소설도 번역한다. 어려운 점은 작가를 만날 수 없는 것. 시대적 분위기를 익히려고 한국사 공부에도 열심이다.

모리스 참사관이 번역한 책들. 왼쪽부터 회색 눈사람, 사람의 아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쓰러진 자의 꿈

“94년에 허균의 홍길동전을 프랑스어로 출판했어요. 한국의 현재 모습을 알아나가는 것만큼이나 매력 있었어요.”

그는 가끔씩 인왕산을 찾는다. 무속인이 굿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마이크가 놓여 있는 회담장 테이블에서 ‘한불 교류’만 선언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죠. 교류는 ‘체험’에서 나와요.”

이것이 그가 최초의 민간인 외교관으로 한불문화축제를 총괄하게 된 이유다. 한국과 프랑스 문화를 모두 체험한 사람이 문화참사관이 돼야 한다고 프랑수아 데스쿠에트 주한 프랑스 대사가 고집했다는 것.

“한국과 프랑스는 서로 ‘이미지’만 가지고 있을 뿐 서로에 대해 잘 몰라요. 프랑스인에게 한국은 월드컵 전쟁 국제통화기금(IMF) 등 단편적인 단어로 연상되고, 한국인에게 프랑스는 패션과 포도주, 기껏해야 ‘테제베(TGV)’를 떠올릴 뿐이죠.”

그는 “한국과 프랑스라는 두 ‘국가’가 아니라 한국인의 삶과 프랑스인의 삶이 있는 두 ‘사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4년 반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승진 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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